: 1925년 한강 유역에서 발생한 사상 최대의 대홍수. 647명 사망, 가옥과 논밭 유실, 피해액 1억 3백만 원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
- 홍수 이후에도 일제는 차별적 구제 활동을 벌이고(37회 참조) 조선인들의 자발적 구제 행위를 탄압하기까지 함. 무엇보다 제방이 없어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은 이촌동 일대의 피해를 복구하기는커녕 되레 폐동을 만들어 조선인의 거주를 금지
- 용산 일대를 일본인 지구로 만들고자 했던 일제의 도시개발계획이 그 배경. 일제는 1920년대 초반부터 한강 변을 일본인들이 즐길 행사를 개최하는 놀이 장소로 개발하고자 했고, 이 와중에 발생한 홍수를 조선인 축출의 기회로 보고 민족 차별적 정책을 시행한 것
→ 민족과 계급, 자본의 위계가 뒤섞여 발생한 사회적 재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