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텅구리 네컷만화

자작자급 34~39회
을축년 대홍수
  • 자작자급 36회 1925.7.24.
  • 경성부수재도(京城府水災圖). 을축년 대홍수에 범람한 용산과 마포 일대의 피해상황 및 수심 조사지점을 지도에 표시한 것.
  • 동아일보에 실린 을축대홍수 당시의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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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5년 한강 유역에서 발생한 사상 최대의 대홍수. 647명 사망, 가옥과 논밭 유실, 피해액 1억 3백만 원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
  1. “뚝섬 상부에 있는 신천리, 잠실리 두 동리는 약 1000호에 약 4000명이 전부 물속에 들어서 모두 절명 상태에 있다는데 그곳은 무인고도(無人孤島)와 같이 되어 배도 들어갈 수가 없으므로 구조할 도리가 전혀 없으며 17일 밤 10시경부터 살려 달라는 애호성이 차마 들을 수 없이 울려왔는바 그동안 모두 사망하였는지도 알 수 없더라”

    (조선일보 호외, 1924년 7월 18일)

  1. 홍수 이후에도 일제는 차별적 구제 활동을 벌이고(37회 참조) 조선인들의 자발적 구제 행위를 탄압하기까지 함. 무엇보다 제방이 없어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은 이촌동 일대의 피해를 복구하기는커녕 되레 폐동을 만들어 조선인의 거주를 금지
  2. 용산 일대를 일본인 지구로 만들고자 했던 일제의 도시개발계획이 그 배경. 일제는 1920년대 초반부터 한강 변을 일본인들이 즐길 행사를 개최하는 놀이 장소로 개발하고자 했고, 이 와중에 발생한 홍수를 조선인 축출의 기회로 보고 민족 차별적 정책을 시행한 것

    → 민족과 계급, 자본의 위계가 뒤섞여 발생한 사회적 재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