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텅구리 네컷만화

100년 전인 1924년 10월 13일
국내 신문 최초의 네컷 연재만화

‘멍텅구리’는 ‘헛물켜기’ ‘연애생활’ ‘자작자급’ ‘가정생활’, ‘세계일주, ‘꺼떡대기’, ‘가난사리(살이)’, ‘사회사업’, ‘학창생활’, ‘또나왔소’ ‘모던 생활’ ‘기자생활’ 등 시리즈 12편으로 이뤄졌다. 전봉관 카이스트 교수 연구팀은 올 상반기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네컷만화 감지 기술을 이용, ‘멍텅구리’ 연재 횟수를 총 744회로 정확히 밝혀냈다.

‘멍텅구리’ 작가는 산수화 대가인 심전(心田) 안중식의 양대 제자인 심산 노수현과 청전 이상범이었다. 한국화를 정통으로 배운 예술인들이었다. 노수현은 광복 후 서울대 미대 교수를 지내며 후학을 길렀고, 이상범 역시 당대를 대표하는 최고 작가로 떠올랐다.

‘멍텅구리’는 당초 ‘코믹만화’ ‘오락만화’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정희정(‘만화 멍텅구리로 본 근대 도시, 경성의 이미지’, ‘미술사논단’ 43호,2016)은 ‘멍텅구리’가 총독부 정책을 직간접적으로 강하게 비판했다고 지적한다.

‘치안유지법’ 비판이 대표적이다. 최멍텅이 사기로 목돈 버는 꿈 얘기를 하자 윤바람이 손사래 친다. ‘나쁜 마음만 먹어도 10년 징역’ (1925년 5월 17일 자) 이라며 치안유지법을 대놓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치안유지법은 일본이 관동대지진 이후의 혼란을 막는다며 1925년 5월 12일 시행했다. 공산주의 단속을 내세웠지만 독립운동 탄압에 이용된 악법이었다.
‘멍텅구리’에는 순사가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을 때리거나 파출소에 가두고, 군중과 만세 소리에 놀라 해산을 명령하거나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한다. 식민지 정부의 폭력을 상징하는 도구인 셈이다.

또 ‘멍텅구리’는 민물 게장 파는 것까지 간섭하고, 담배 전매제로 돈 벌기에만 여념 없는 총독부를 비판한다. 미두투기(米斗·쌀, 콩 등을 대상으로 현물 및 선물 거래)광풍과 ‘좌측통행’ 실시를 풍자하기도 한다. ‘멍텅구리’ 덕분에 1920~30년대 조선 사회의 현실과 비판적 감각을 더 실감 나게 느낄 수 있게 된 것은 커다란 수확이다.

캐릭터

2024년 10월 13일

멍텅구리

연재 100주년
1924.10.12
멍텅구리 연재 시작을 알리는 사고(社告).
'우습고 재미있는 그림이야기'라는 부제 하에 주인공과 연재될 만화의 내용 및 성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또 이러한 형식이 서양과 일본을 비롯해 "세계 대류행의 한가지"로 조선에서는 처음이라고 밝히면서 웃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만큼 흥미를 선사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멍텅구리 연구사
한국 만화사의 기념비적 작품

    서은영. 코믹스(Comics)의 기획과 대중화:
    신문연재만화 <멍텅구리>를 중심으로 서강인문논총, 2011, 31: 273-304.

  1. 최초의 장편 연재물로 기획된 공동창작물이자, 최초의 OSMU(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원천 콘텐츠를 여러 형태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 사례.
  2. 만화 기법적 측면에서도 우월, 대중적으로 흥행함.

    정희정. 만화 <멍텅구리>로 본 근대 도시, 경성의 이미지. 미술사논단, 2016, 43: 179-206.

  1. 한국 만화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그 중요성은 익히 알려져 있으나 충분히 연구가 이뤄지지 않음.
  2. 당대 경성의 풍경을 담은 시각 사료이며, 코믹만화뿐 아니라 시사만화로서도 가치가 있음.

    하종원. 식민지 조선의 신문연재만화의 즐거움과 욕망:
    <조선일보> 네컷만화 [멍텅구리] (1924~1927)를 중심으로. 사회과학연구, 2019, 30.1: 113-133.

  1. 에피소드를 통한 연속적 이야기의 구성, 다양한 언어적 표현과 시각적 기호를 활용함으로써 네 칸 만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극대화.
  2. 신문이 기업화, 상업화되기 시작한 언론 현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지표.

누가, 어떻게 창작?
최초의 공동창작(김동성, 이상협, 안재홍, 노수현)

(왼쪽부터) 김동성, 이상협, 안재홍, 노수현.
  1. 일반적으로 멍텅구리 시리즈는 김동성이 기획하고, 동양화가 노수현이 만화를 그리고 언론인 이상협과 안재홍이 이야기를 만든 공동 작업이라고 알려져 있음
  2. 만화 연재 중반 이후 만화의 내용을 만드는 작업의 담당자가 바뀐 것은 분명, 어느 시점에서는 편집국 내 불특정 다수의 직원이 관여한 것으로 파악
  3. 노수현이 1926년 퇴직하자 심전 문하의 동료 청전(靑田) 이상범(1897~1972)이 뒤를 이어 ‘멍텅구리’를 그림. 1933년 2월 26일 다시 등장한 ‘멍텅구리’는 김인화가 그렸는데, 몇 달 후 지면에서 사라짐
천리구(千里駒) 김동성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말'이라는 호(號) 그대로, 대단한 여행 편력을 지녔다.
미국에서 10년간 유학한 후 돌아와 조선 땅에 최초로 미국식 코믹 만화를 도입한 만화가였다. 동아일보·조선일보·조선중앙일보 등 주요 일간지를 두루 거치며 언론계를 주름잡았으며, 노수현을 비롯해 이상범·안석주 등 1920년대 신문 만화 전성기를 이끈 이들에게 만화를 가르쳤다.
심산(心汕) 노수현 - 1899~1978
황해도 고산 출신, 개성에서 성장.
김동성, 이상협과 함께 신문사를 이동하며 활동. '멍텅구리', '마리아의 반생', '연애경쟁'등 다양한 신문 만화 제작
다수의 신문 소설 삽화 작업 : 최독견의 '탁류', 이태준의 '딸 삼형제' 유진오의 '화상보' 등 (소설가 이광수가 특히 좋아한 동양화식 필치의 삽화)
의의 : 최초의 분업 시스템에 의한 공동창작
- 한 시리즈의 만화가 한 일간지에 오랜 기간, 동일한 형식으로 연재되고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소비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공동창작에 기인한 측면)
- 개인적 작업보다 시대를 반영하는 지표로서의 가치를 높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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