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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텅은 시세를 따라 양력 새해를 기념하겠다며 동네 방앗간마다 흰떡을 주문해 수레에 가득 싣고 귀가한다. 옥매가 기겁을 하며 돈으로 물려 오라 하자, 집 앞에 가게를 차려 20배를 밑지고 팔아치운다
- “(일제강점기 설날에는) 아이고 술도 못 만들고 떡도 못 만들고 감시하고. 여기 칼 찬 순경들이 있어. 그 자식들이 밤에 와서 몰래 봐. 못해. 떡 만드는 거. 술 막걸리 냄새 귀신같이 알어. 걸리면 혼나게 붙잡혀서 직사게 얻어맞는 거지. (…) (양력 설날에는) 아무것도 안 했어. 한국 사람들은 오기가 있어서 하라면 하는 척도 안 하고 음력 설날만 지냈지. (…) 일부러 음력설 지냈어. 반항하는 거야.”
(1933년생 종로구 출신 구술자)
- 일제강점기 들어 조선총독부는 전통 설을 '구정'으로, 양력 1월 1일을 '신정'으로 명명하며 양력설을 권장. 전통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의 일환
-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조선인들은 음력설을 지내옴. 경성에서는 북촌과 남촌으로 나뉘어 조선인과 일본인이 각각 다른 설을 쇠는 문화가 형성
- 신문과 잡지에서는 대외적으로 양력설을 긍정했지만, 북촌의 활기찬 음력설 풍경을 묘사하며 음력설의 중요성을 간접적으로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