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자급 17 1925.7.2. 요릿집 뽀이가 된 멍텅과 바람은 허구한 날 사고만 치는 탓에 교자 배달부로 강등이 된다. 가마에 실린 교자상 차림은 앞뒤로 서서 나란히 옮겨야 할 만큼 푸짐하다. 멍텅과 바람은 배달을 가다가 공원으로 빠져 거기서 손님상을 먹고 노는데, 이 모습처럼 야외의 공원이나 사찰은 당대 상류 계층들이 음식을 먹으며 놀이를 즐기던 새로운 공간이었다.
자작자급 62 1925.8.19. 서울 양반도, 최신 유행을 좇는 모던보이 모던걸도 이 설렁탕 맛에 반해 있었지만, 흔하고 만만한 음식인 설렁탕집에 직접 가서 먹는 꼴이 곤란해 주로 집에서 배달을 시켜 먹었다. 배달부로 취직한 멍텅구리가 가장 먼저 한 일도 “훈련원에 가서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61회) 것이었다. 그러나 뚝배기 수십 그릇을 어깨에 얹고 위태위태 자전거를 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똥통 구루마와 충돌하고 설렁탕은 죄다 쏟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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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신문물의 물결은 음식 문화에도 밀려와 전통적인 식생활과 충돌하고 뒤섞임. 도시화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경성은 외식문화가 발달했으며, 식당에 직접 방문해 음식을 사 먹기도 했지만 배달 주문을 하는 것도 가능. 가정집이나 사무실에서는 주로 청요리(중식)나 소바(일식), 설렁탕 등을 시켜 먹었고 요릿집에서는 교자상을 한상차림 통째로 배달해 줌
요릿집 교자상이 자본가나 재력가가 즐기던 배달 음식이었다면, 중산층과 서민이 즐겨 찾던 대표 음식은 설렁탕. 1920년대 중반 설렁탕 한 그릇의 가격은 10~15전 남짓이었는데, 냉면이나 장국보다 저렴했고 달걀 3개 값 정도에 불과했다 함
분명한 기원은 없지만 설렁탕은 아주 오래된 서울 음식으로 추정됨. 특히 종로 일대에는 대창옥 등 유명한 설렁탕집이 많았고, 자전거가 생긴 뒤에는 주된 배달 음식이 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