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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친시장 개혁 '심폐소생'… 경제 성적 세계 1위로

    한경진 기자

    발행일 : 2024.02.02 / W-BIZ B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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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퓰리즘 끊자, MS·화이자 등 밀물… 외국인 직접투자 48%(2022년) 급증

    B7면에서 계속

    투자 열기는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리스의 지난 1년간 주식 수익률(2022년 4분기~2023년 3분기 기준·물가 반영)은 43.8%에 달한다. 아테네에 본사를 둔 핀테크 기업 비바월릿은 2022년 그리스 최초의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건설 붐도 일고 있다. 요즘 옛 아테네 국제공항 부지에선 그리스 민간 투자 사상 최대 규모인 82억달러를 투입한 '엘리니콘' 개발 사업이 한창이다. 2001년 폐쇄된 이후 방치됐던 620만㎡(약 187만6000평) 규모 공항 부지는 호텔·관광·주거 시설이 있는 스마트 시티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여기에 코로나 종식 효과도 더해졌다. 그리스에는 지난해 관광객 1000만명이 찾아오면서, 210억유로(약 30조5000억원) 상당 경제 효과가 일어났다. 그리스 GDP의 18.5%(2022년 기준)를 차지하는 관광업이 뜨면서 국가 경제에도 빛이 들고 있는 셈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던 그리스는 10년 전 유로존을 무너뜨릴 뻔했지만, 이제는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가 됐다"고 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이 유로존 평균치의 배 이상인 2.4%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검은 양은 없다. 황소 뿔 잡고 간다"

    그리스 경제가 국제 신뢰를 되찾는 여정에는 중독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끊어낸 국민의 각성이 있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겠다"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1981년 선심성 복지 정책을 남발하며 빚더미에 오른 그리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들었다. 급기야 2015년에는 급진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렉시트(Grexit·그리스 유로존 탈퇴)'를 무기로 채권단을 공갈·협박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럴수록 국민 삶은 더 궁핍해졌다. 결국 경제 구조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달은 그리스인들은 2019년 친시장 정책을 표방한 우파 정권을 선택했다.

    "그리스는 더 이상 유럽의 '검은 양'(골칫덩어리)이 아니다." 미초타키스 총리가 지난해 11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검은 양 그리스는 이제 유로존에서 가장 안정적인 경제로 거듭나고 있다"며 "그리스와 독일 관계의 (갈등) 서사를 바꾸는 것, 긴장과 편견, 의심의 시대를 뒤로하고 낙관적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구제금융 협상으로 거칠게 충돌해 온 두 나라의 관계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황소의 뿔을 잡고 간다." 미초타키스 총리가 즐겨 쓰는 표현 중 하나는 '황소의 뿔'이다. 위기 돌파를 위해 강력한 친기업 어젠다를 용기와 결단력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정치적 레토릭(수사·修辭)이다. 미초타키스 정부 초대 개발부 장관을 지낸 아도니스 게오르기아디스는 "우리는 (경제를 굴러가게 할) 바퀴를 재발명하기보다는, 이미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모범 사례를 따를 것"이라며 "비즈니스에 진심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시장 원리에 충실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책 방향에 맞춰 미초타키스 총리는 법인세율을 28%에서 24%로, 배당 소득세는 10%에서 5%로 인하했다. 50만유로(약 7억2000만원) 이상 부동산을 구입할 경우, EU 거주 자격을 부여하는 프로그램을 신설해 해외 자본 유치에도 나섰다. 공기업 민영화, 관료주의 타파, 부패 방지를 위한 국가 투명성기구 설립 등 투자 환경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정비했다. 무상 의료 혜택을 폐지하고, 연금 제도도 과감하게 수술했다. 지하경제를 양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현금 영수증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해 10월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서는 처음으로 그리스의 신용 등급을 'BB+'에서 'BBB-'로 올리며 13년 만에 '투자 적격' 등급을 부여했다.

    경제 심판한 그리스인의 선택

    잇따른 복지 혜택 축소로 민심이 돌아설 것이란 예상을 깨고 미초타키스 총리는 지난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재집권했다. 치프라스 전 총리가 이끄는 급진 좌파 연합은 최저임금 즉각 인상, 주 35시간 근로제(현재 40시간), 연금 인상 공약으로 정권 탈환을 노렸지만, 아고라의 시민은 두 번 속지 않았다.

    그리스인에게 2015년의 대혼란은 지금까지도 생생한 트라우마다. 하루 예금 인출금이 60유로(약 8만6000원)로 제한돼 매일 아침 현금자동지급기(ATM) 앞에서 발을 구르고, 밀가루와 설탕·의약품을 사재기하며 생존을 대비했던 경제적 재난은 쉽게 잊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당시 아테네 중심가는 '(긴축안) 오히(OXI·반대)를 찍어라' '부자를 먹어 치우자!(Eat the rich!)' 같은 문구로 도배됐고, 성난 국민은 광장에서 "평생 빚만 갚다 죽을 수는 없다"며 울부짖었다. 공무원만 행복한 나라의 복지 시스템은 단단히 고장 나 있었다. 서민들은 '무상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웃돈'을 건네야 했고, 소득 대체율 90%에 달하는 연금 혜택에도 애당초 일거리가 없어 빈곤에 시달렸다.

    그렉시트 시한폭탄을 흔들며 구제안을 거부했던 치프라스 총리가 국민과의 약속을 깨고 가혹한 구제안을 전부 수용한 사실은 좌파 포퓰리즘이 붕괴하는 결정타였다. 이후 2019년과 2023년 치러진 그리스 총선은 경제 심판 선거가 됐다. 부유한 토목 사업가 집안에서 자라 공산주의 운동 이력으로 좌파 수장이 된 치프라스, 보수당 총리 아들로 하버드 MBA, 매킨지 컨설턴트를 거쳐 우파 리더가 된 미초타키스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영국 가디언은 "다시는 과거와 같은 일을 겪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유권자들의 선택을 이끌었다"고 했다.

    수퍼선거의 해, 세계가 그리스를 주목

    그리스 정부는 EU 회복기금 312억 유로를 포함한 총 589억 유로(약 85조원)를 디지털 전환과 고용·인재 개발에 투자하는 중장기 경제성장 프로그램 '그리스 2.0'을 이행하고 있다. 오태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원은 "지난 10년간 국제 채권단에서 요구한 경제 개혁안을 충실히 이행한 그리스는 경제 체질 개선으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관광과 해운업을 넘어 성장을 견인할 미래 산업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그리스 경제의 '회생 분투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란 해석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변신만으로도 그리스는 '수퍼 선거의 해'를 맞이한 올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2024년 세계 인구의 절반이 투표에 참여할 예정인 만큼, 전 세계 민주주의자들은 그리스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지난 18일(현지 시각)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참석해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 편집장과 대담을 가졌다. "재집권에 성공한 중도 우파 지도자로서 포퓰리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왜 또 이겼을까요? 쉽고 뚜렷한 해결책이라며 제시하는 방안은 대개 실행에 옮길 수 없는 공약입니다. 우리는 약속을 이행했고, 경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결국 선거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경제이기 때문이죠. 2020년 총리 자격으로 처음 다보스에 왔을 때 외국인이 그리스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이제는 성장률, 일자리, 투자 등 과거보다 훨씬 더 나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한결 쉬워졌습니다."

    [그래픽] 체질 개선 성공한 그리스 경제
    기고자 : 한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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