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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의 커피하우스] 국민은 국회를 탄핵하고 싶다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발행일 : 2023.11.17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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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이 인간을 타락시킨다는 건 틀리는 말이다. 아일랜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권력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게 아니라, 바보들이 권력을 타락시킨다고 말했다. 잘 쓰면 권력만큼 세상에 이로운 것이 없다. 문제는 그게 바보들 손에 들어갔을 때 어떤 흉기가 돼서 세상을 어지럽힐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바보들 손에 권력을 쥐여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요즘 대한민국 국회만큼 잘 보여주는 곳이 또 있을까 싶다. 그게 어떤 흉기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휘휘 휘두르며 노는 모습이 흡사 원시인 같다. 청문회에서 탄핵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도와 수단을 저렇게 철저하게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는 권력 집단을 매일 봐야 하는 국민은 무슨 죄인지 모르겠다. 국가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 미래(공천)에만 목을 매고, 민생 법안은 안중에도 없이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되는 입법에 몰두한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저렇게 막 갖다 쓸 수는 없다. 아니 써서는 안 된다. 세금으로 월급 받고 국고에서 보조받으며, 온갖 특혜를 철갑처럼 두르고 저렇게 살아도 되는 직종이 하늘 아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원래는 탄핵도, 청문회도, 모두 좋은 취지로 출발했을 것이다. 회기 중에 국회의원을 체포하지 않는 것도 민주 사회의 신성한 입법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 좋은 제도를 바보들이 들어가 이상한 도구로 변질시켜 버렸다. 탄핵은 국정 마비와 협박 도구로, 청문회는 망신 주기 대회로, 또 불체포 특권은 범죄자 보호용 방패로 사용하며 본래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제도는 잘못이 없다. 그걸 사용하는 인간들의 수준이 망쳐 놓았을 뿐이다.

    거대 야당은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그 큰 덩치로 자기들 본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중이다. 힘이 없었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터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며 사는 집단인지. 어떤 상식이 그 안에서 통하고, 어떤 인물이 그 안에서 추앙받는지, 밖에서는 알 턱이 없다. 힘이 생겨서 그걸 휘두르다 보니 모든 사람이 주목하며 알게 되었다. 바보도 덩치가 작고 힘이 없으면 위협적이지 않다. 국민은 그들을 보며 권력을 엉뚱한 자들에게 몰아주면 어떤 일을 겪는지 교훈을 얻는 중이다.

    야당이 저러하니 여당이라고 온전할 수 없다. 거기에 대응하는 묘수를 찾는 데 에너지를 소비하느라 집권당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다. 여당도 개혁해야 하는데 카운터파트가 형편없으니 동기도 열의도 시들할 수밖에 없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내놓은 몇 가지 혁신안은, 국민 눈높이에서 보자면 혁신이랄 것조차 없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다. 중진이든, 친윤이든, 그대들은 국민에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 국민이 사는 곳을 자기들 기준에서 험지와 비험지로 나누고, 서로 등 떠밀며 버티는 모습이라니, 언제부터 '불출마'나 '험지 출마'가 '희생'과 동의어가 되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저렇게 세상을 철저하게 자기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국가의 미래를 맡긴 국민이 불쌍하다.

    '바보'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을 사람들을 위해 뜻풀이를 해야겠다. 바보를 뜻하는 영어 'idiot'의 어원은 '사적(private)'을 뜻하는 그리스어 'idios'에서 나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도시국가인 폴리스를 공적 장소라는 뜻의 '코이논'이라고 했고, 가정의 울타리 안을 사적 장소라는 뜻의 '오이코스'라고 불렀다. 주로 가정 안에서 노동하는 노예나 여성들은 바깥일에 무지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idiot'이라는 단어가 부정적 의미로 쓰이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공적 생활과 동떨어진 삶이 그 어원이다. 그러나 가정의 노동이 바탕이 되어 공적 활동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으니 그 둘은 상호 보완적 관계라고 보았다. 따라서 폴리스에서 중책을 맡아 일하는 공직자나 엘리트, 혹은 똑똑한 사람들에게 '공적 마인드'는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바보'라는 말조차 과분하다. 바깥 물정에 어두운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염치와 상식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염치는커녕 뻔한 불법을 저지르고도 국회의원의 특권을 한껏 이용해 자신을 보호하고, 당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자화상이다. 뇌물 받고, 폭력 저지르고, 성추행하고,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재판 또는 수사를 받고 있는 의원이 37명에 이른다. 그런 그들이 657조원이나 되는 정부 예산을 주무르고 법을 만든다. 이런 국회, 국민은 탄핵하고 싶은데, 무슨 짓을 해도 그들을 벌주거나 탄핵할 방도가 없다.

    그동안 한국 정치가 수준급 정치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때 희망인 시절도 있었고, 적어도 국가와 국민을 생각한다는 사람 몇몇이 정치 일선에 나가고 물러나곤 하는 걸 본 적이 있는 듯하다. 그 경위와 이유가 어떠하든, 요즘 정치에선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서슬 퍼런 권위주의 시절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국회는 사회의 갈등을 녹여내고, 국가의 미래를 밝혀주어야 하는데, 지금은 제 발 앞 등불만 밝히는 정치인들 때문에 나라가 칠흑 같다. 특정 정당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사람을 제외한, 중립적인 대다수 보통 시민이라면 뭔가 변해야 한다고 느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내년 총선에서 그게 누가 되었든, 국민 수준에 턱없이 모자라는 정치를 상식 수준으로라도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정당 쪽에 표를 던질 것이다.
    기고자 :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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