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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대사 보물] 서울 독자 나동호씨의 1966년 날짜변경선 통과 기념증

    채민기 기자

    발행일 : 2023.05.16 / 문화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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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 출범하기도 전에 간 유럽
    일본항공 타고 갔다 오니 항공사서
    통과 시각·노선 등 적어서 보내줘

    '잎담배 수출로 외화 20만불 벌어' '영국-오스트리아에도 수출 우리나라 잎담배' '잎담배 360㎏ 베네수엘라에 수출'….

    1966년 2~4월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대한민국의 한 해 수출액이 2억5000만달러에 불과했던 시절 잎담배가 주요 외화 소득원이었음을 보여준다. '대한뉴스'도 외화 획득 방안의 하나로 잎담배 수출을 소개했다. 유럽 15국으로 시장을 확대해 연간 8400톤을 수출하고 외화 526만달러를 벌어들이겠다는 게 그해 전매청의 목표였다.

    서울 서대문구 독자 나동호(93)씨는 1966년 잎담배를 수출하는 회사의 무역 부장이었다. 전매청에서 생산한 담배를 민간 기업이 수출했다고 한다. 독일 함부르크의 거래처에서 상담 요청이 와서 그해 처음으로 해외 출장을 갔다. 7월부터 두 달 동안 유럽을 거쳐 미국 버지니아의 잎담배 회사까지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당시는 한진상사가 국영 대한항공공사의 경영권을 인수해 대한항공을 출범(1969년)시키기도 전이었다. 나동호씨는 김포공항에서 노스웨스트 항공기를 타고 도쿄까지 간 뒤 일본항공(JAL) 편으로 유럽에 갔다. 귀국할 때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도쿄까지 일본 항공기를 탔다.

    세계적으로도 국가 간 여행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다. 나씨는 "북극을 통과하거나 날짜변경선을 지나갈 때 기장이 방송하고 승객들이 다 같이 손뼉을 쳤다"고 했다. 여정을 마친 뒤 일본항공에서는 승객 이름과 주소, 경계선을 통과한 시각과 이용 노선이 적힌 기념증〈사진〉을 우편으로 보내줬다.

    일반 국민은 외국에 나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정부는 외화 낭비, 공산권 주민 접촉 등을 우려해 외국 여행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여권을 가진다는 것부터가 특별한 일이었다. 단순 여행 목적의 출국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누군가 출국한다는 소식이 신문의 동정란에 실리기도 했다"는 게 나동호씨의 기억이다.

    해외여행은 서울올림픽을 통해 국제 무대에서 자신감을 얻은 1989년에야 전면 자유화됐다. 여권을 받는 필수 과정이었던 반공 교육이 1992년 폐지되는 등 자유화 이후까지 남아 있던 규제도 점차 사라졌다. 출국자는 한 세대 만에 2890만명(2019년)까지 늘어 해외여행 3000만명 시대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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