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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범 혀 깨물었다고… 59년을 가해자로 살아"

    양은경 기자

    발행일 : 2023.05.16 / 사회 A1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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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와 가해자 뒤집혔다"… '눈물의 재심 신청' 77세 최말자씨

    1964년 5월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했던 18세 소녀는 '중상해'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가해자 남성이 '주거침입'으로 선고받은 형(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보다 더 무거웠다.

    그 18세 소녀는 지난 2020년 5월 법원 판결을 뒤집기 위해 그 사건의 재심(再審)을 신청했던 77세 최말자씨다. 최씨는 '56년 만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를 실행했지만, 2021년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재심 요청을 기각했다. 대법원이 2년째 재심 개시 여부에 대한 판단을 미루는 가운데, 최씨는 지난 2일 여성 단체 회원들과 함께 대법원 앞에서 재심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산여성의전화'에서 최씨를 만났다.

    ―사건이 일어난 지 59년이 지났다.

    "그때 친구가 아버지 제사 지내고 그 떡을 우리 집에 갖다주려고 왔는데 모르는 남자(노모씨·당시 21세)가 친구들을 쫓아왔다. 친구들은 '저놈을 보내야 집에 간다'고 했고 노씨는 '길을 알려 달라'고 하더라고. 나 혼자 그 남자를 큰길까지 데리고 갔는데, 큰길에 다 와서 나를 세 번을 넘어뜨리고 내 위에 올라탔다. (그 남자 혀를 깨문 사실도) 그 순간에는 몰랐다. 사투가 벌어졌다."

    ―수사는 어떻게 진행됐나.

    "경찰에서는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줬다. 그런데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고 검사가 오라고 해서 아버지와 같이 갔다. 앉아 있으니까 수갑을 탁 채웠다. 어딘지도 모르고 갔는데 요만한 방에다 가뒀다. 욕하고 윽박질렀다. (조사가 끝나고) 버스를 탔는데 교도소에서 내렸고 죄수복을 갈아입으라고 하더라. 6개월간 구속됐다."

    ―재판 과정은 어땠나.

    "욕하고 윽박지르는 것만 없었지 검찰이랑 똑같았다. '순결성 검사' 하고, 남자 친구가 있느냐 없느냐, 성관계 했냐 안 했냐,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니냐."(당시 1심 재판부는 "혀를 끊어버림으로써 일생 말 못 하는 불구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은 정당한 방위의 정도를 지나쳤다"고 판단했다.)

    ―재심 청구를 하게 된 계기는.

    "못 배운 게 한(恨)이 돼 60세 넘어서 방통대에 입학했다. 3학년 때인가 '성 사랑 젠더'라는 교재가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내 과거가 딱 떠올랐다. 동기 회장에게 내 사건을 얘기했더니 '서울로 가자'고 해서 2018년 한국 여성의 전화를 가게 됐다. 그때 판결문을 처음 봤다."

    ―판결문에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내가 피해자인데 가해자로 만들었다. (가해자 남성의) 성폭행을 빼 버리고 특수주거침입하고 협박만 갖고 재판을 한 거였다. 그래서 정당방위가 안 된 거였다. 법을 알지 못해 당시 항소도 못 했다."

    ―재심이 가능하다고 보는 근거는.

    "가해자가 사건 4개월 후에 1등급 받아서 군대 갔고 베트남 파병도 갔다. 중상해가 아니라는 거다. 또 하나는 검찰 수사 때 구속이 불법적이고 재판도 부당했다는 점이다.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부산지법의 재심 청구 기각 결정문을 보고 '조롱당한 것 같다'고 했는데.

    "부산지법이 '청구인(최씨)에 대한 공소와 재판은 반세기가 넘어서 오늘날과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이뤄졌다'고 했는데 이게 맞느냐? 자기들이 그 법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지 않나. 그러면서 '우리 재판부 법관들은 청구인의 재심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이러한 청구인의 용기와 외침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게 말이 되나. 앞뒤가 안 맞는다. 차라리 입이나 다물고 있든지."

    ―재심 요건이 법적으로 제한돼 있다.

    "내 사건은 왜 안 되나. (검찰이나 법원이) 성폭행 뺀 것, 잘못이지 않은가. 그래서 정당방위가 안 됐다. (가해 남성이) 불구가 됐다는데 군대도 갔다. 이렇게 두 가지가 분명하지 않은가."

    ―2020년 부산 황령산에서 발생한 비슷한 사건은 판결이 정반대였는데.

    "'황령산 사건'은 (혀 절단 부위가) 3cm이고 나는 1.5cm인데 왜 중상해까지 가느냐고. 판검사들이 어린 나를 앞에 두고 압박하고…. 자기 새끼고 자기 형제 같으면 그렇게 했겠는가. 반세기가 넘었다? 그때는 대한민국이고 지금은 대한민국이 아닌가. 그때도 지금도 같은 법 아닌가." ('황령산 혀 절단' 사건은 혀가 절단된 성폭행범이 피해자를 고소했다가 '강간 치상'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대법원 결정이 미뤄지고 있는데.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어느 쪽으로든 서둘러 결정을 내려달라."

    ☞최말자 사건

    최말자씨는 18세이던 1964년 5월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남성의 혀를 물어 절단했다. 최씨는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남성에게 중상해를 입혔다'며 기소했고, 법원은 1965년 1월 최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최씨는 56년이 지난 2020년 5월 검찰 수사와 재판이 잘못됐다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듬해 2월 '재심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했고, 현재 대법원이 재심 개시 여부를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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