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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미국인 교황에 축제 분위기

8일 미국 워싱턴 DC 국립 성모 마리아 대성당 종탑에 거대한 성조기가 길게 드리웠다. 성당 정문엔 바티칸 시국(市國)의 국기 색인 노란색과 흰색 장식이 걸렸다.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가톨릭 교회 역사상 첫 미국인 교황으로 선출됐다는 소식에 북미 최대의 가톨릭 성당인 이곳에서 성조기와 바티칸 국기 장식을 걸어 축하한 것이다.

성당 홍보 담당자 티머시 디아스씨는 "아르헨티나의 프란치스코에 이어 우리는 두 명의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을 갖게 됐다"며 "내 생전에 미국인 교황을 보다니 너무나 흥분된다"고 했다. 뉴욕 성 패트릭 성당도 방문객과 취재진으로 북새통이 됐다. 티퍼니 치앙씨는 "난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첫 메시지로 평화를 외친 교황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도할 것"이라고 했다.

'아메리칸 포프(American Pope·미국인 교황)' 레오 14세의 탄생에 온 미국이 들썩였다. 특히 새 교황의 고향인 일리노이주 시카고는 "컵스(시카고의 메이저리그 야구팀)가 108년 만에 우승했던 2016년 월드 시리즈가 생각난다"는 반응이 나올 만큼 축제 분위기였다. 시카고 태생 교황에 대한 자부심과 친밀감을 담은 우스개가 소셜미디어에서 이어졌다. "교황은 컵스 팬인지 (또 다른 시카고 야구팀) 화이트삭스 팬인지부터 밝혀야 한다" "교황도 운전면허증 받으려고 시카고 차량국에 줄 섰던 사람" "이제부터 성체(聖體)는 시카고 피자"라는 글도 올라왔다. 시카고 명물인 피자가 가톨릭의 전례용 제병(祭餠)을 대체하리라는 농담이다.

한 시민은 수십 년간 시카고에서 뛰어난 쿼터백(미식축구 핵심 포지션)이 나오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시카고가 쿼터백보다 교황을 먼저 배출했다"고 했고, 브랜든 존슨 시카고 시장은 "교황을 포함해 모든 훌륭한 것은 시카고에서 나온다"고 축하했다. 시카고 사람들이 도시의 문화적 영향력을 강조하는 표현 "미국에서 훌륭한 것은 모두 시카고에서 나온다"에 빗댄 것이다. 시카고 컵스 구단은 시구자로 교황을 공식 초청했다.

미국인 교황은 암묵적 금기였다. 뉴욕타임스는 "바티칸은 교황이 세계의 영적 지도자이자 중재자라는 상징성을 유지하기 위해 수퍼파워 국가 출신은 배제해 왔다"고 했다. 미국처럼 국제 정치의 중심에 있는 국가에서 교황이 나올 경우 교회가 외교적 갈등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그런데도 레오 14세가 선출된 것은 그가 페루 시민권도 갖고 있고, 20여 년간 중남미 선교 활동을 하며 '국경 너머의 인물'로 평가받은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미 언론은 분석했다. 실제로 페루에서도 환호가 이어졌다.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은 레오 14세를 "선택과 신념에 따른 페루인"이라고 했다. 수도 리마의 초등학교 교사 이사벨 파네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분이 교황이라는 사실은 페루인의 자랑"이라고 BBC에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그가 첫 미국인 교황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정말로 영광"이라며 "교황 레오 14세를 만나기를 고대한다. 매우 의미 있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레오 14세가 과거 동성애·낙태에 비판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어 트럼프 지지층도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레오 14세는 2012년 연설에서 "복음에 어긋나는 신념과 실천에 대한 동정심을 대중문화와 언론이 조장한다"며 동성애적 생활 방식 등을 언급했다. 2019년에는 낙태와 관련해 "자궁 속 아이든 연약한 노인이든, 가장 약한 사람들을 버린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레오 14세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에 비판적인 기사를 소셜미디어에 여러 차례 공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에는 프레보스트 추기경 이름의 X 계정에 "J D 밴스는 틀렸다: 예수님은 사랑에 등수를 매기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가톨릭 언론 기사가 공유됐다. J D 밴스 부통령이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반이민 정책을 옹호하며 "가족, 이웃, 동료 시민과 나라를 사랑하고 그다음에 나머지 세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기독교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반박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해당 계정을 새 교황이 직접 운영했는지 아니면 보좌진이 관리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했지만, 이런 정치적 입장이 미국 보수 진영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기고자 :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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