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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참여 학생 34%에 그쳐

전국 의대생의 절반가량이 유급 처분을 받는다. 대규모 집단 유급이 확정되면서 내년에 24·25·26학번이 1학년으로 함께 공부하는 초유의 사태와 본과생들의 실습 수업 파행도 불가피해졌다. 의대생 10명 중 4명 이상이 수업 거부로 인해 한꺼번에 유급됨에 따라 의사 인력 양성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교육부는 9일 "전국 40개 의대 제출 자료를 취합한 결과, 의대 재학생 1만9475명 중 8305명(42.6%)이 유급 처분을 받고 46명이 최종 제적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성적 경고 대상자도 3027명이다. 결국 전국 의대생 가운데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은 34.4%(6708명)에 그친다. 유급 대상 8305명 가운데 예과생(1·2학년)은 2455명, 본과생은 5850명이다. 예과생은 수업을 거부해도 당장 유급시키지 않는다는 학칙을 둔 대학이 많아 본과생보다 예과생 유급자가 적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수혜자인 25학번 학생들도 수업 거부로 대거 유급·제적된다. 전체 4464명 중 1241명은 유급, 12명은 제적, 1419명은 성적 경고 등을 받게 됐다. 수업에 정상적으로 참여하는 25학번은 1214명(27.2%)에 그쳤다.

교육부와 대학은 내년에 입학할 26학번 신입생들에게 수강 신청 우선권을 주는 방식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제적된 학생들의 빈자리는 모두 편입학으로 충원해서 의료 인력의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전북대 의대는 재학생 808명 중 78.3%인 633명, 원광대는 737명 중 74.8%인 551명이 유급 대상이 될 전망이다. 계명대는 재학생 493명 중 299명(60.6%)이 유급 대상자라고 교육부에 통보했다. 이른바 '빅5' 병원에 속한 성균관대와 울산대 역시 상당수 학생이 유급 확정 통보를 받았다.

의대는 다른 전공과 달리 학기 단위가 아닌 1년 단위로 학사 일정을 운영한다. 올 1학기 기준 유급 대상자가 된 8305명은 2학기에 수업에 복귀할 수 없고 사실상 내년에 할 수 있다. 유급되는 24·25학번들은 내년에 입학할 26학번과 함께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내년 1학년은 올해 유급되는 1626명과 내년 신입생 3058명, 그리고 올해 수강 신청을 한 과목만 한 학생, 성적 경고 대상 등을 모두 합해 최대 69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제적 규모는 예상보다 크게 줄었다. 지난 2일 '한 달 이상 무단결석하면 제적된다'는 학칙을 갖고 있는 다섯 대학은 의대생 1916명에게 '제적 예정 통보'를 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제적을 피하려고 막판에 복귀하면서 46명만 제적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올 2학기까지 학생들이 수업을 계속 거부하면 연말에 제적 대상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의대는 통상 '성적 경고'를 세 차례 받으면 제적되는데, 지난해 상당수 학생이 성적 경고를 한 차례 받았고 올 1학기에 3027명이 받은 데 이어 다음 학기까지 수업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경고 누적으로 제적된다. 제적생은 해당 학년에 자퇴 등으로 결원이 발생하면 재입학도 가능하지만, 예과 1학년은 결원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재입학도 어렵다.

현장에선 본과 3·4학년 때 진행되는 임상 실습 교육 파행을 우려하고 있다. 매년 전국 40개 의대의 임상 실습 정원은 2500명 안팎인데, 올 1학기 본과 3·4학년에서 유급이 2898명이나 발생했다. 정상적으로 내년에 본과 3·4학년이 되는 올해 본과 2·3학년 재학생 1700여 명에 군 전역 본과생까지 합치면 임상 실습 대상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아주대 의대 교수회는 지난 7일 성명을 내고 "(예과생 교양) 강의는 큰 강의실을 확보하면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으나 임상 실습 교육은 대규모 학생을 수용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의대들은 실습 병원을 추가로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본과생들은 주로 각 대학의 수련 병원에서 실습 수업을 듣는데,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 의료 기관 등에서도 실습하는 방안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대생들이 대학 수련 병원을 원할 가능성이 높고, 단기간에 임상 교육이 가능한 시설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사립대 의대 교수는 "다른 학년과 수업을 함께 들어야 하는 현 예과생과 본과생들은 향후 전공의 수련, 의대 교수 임용 등 주요 시기마다 치열한 경쟁을 겪어야 한다"면서 "소위 '트리플링(tripling) 세대'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정부와 대학 차원에서 세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선 정부·대학의 오락가락 정책이 이번 의대생 집단 유급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학생들의 집단 휴학계 제출은 불법"이라고 해놓고도 학생들이 굽히지 않자 결국 휴학을 인정해 줬다. 올해 학생들이 계속 수업을 거부했을 때도 교육부는 "3월 말 의대생 전원 복귀를 전제로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동결하겠다"고 했다. 이후 복귀자가 26%에 그쳤는데도 3058명을 확정해 줬다. 또 "4월 말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유급·제적 처분한다"고 했지만, 대학들이 교육부에 유급·제적 명단을 제출하는 지난 7일까지 복귀하는 학생은 받아주도록 사실상 허용했다. 이를 통해 원칙대로라면 제적됐을 학생 상당수도 제적을 면했다.

이렇게 정부가 수차례 원칙을 어기자 의대생들 사이에서 "정부 말을 믿을 필요 없다. 설사 이번에 유급되더라도 차기 정부와 협상하면 유급이 취소될 수 있다"는 의견이 퍼졌다는 것이다.

복귀한 의대생들과 다른 전공 학생들은 "왜 의대생들에게만 특혜를 주느냐"는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한 의대생은 "수업 거부 학생들은 교육부와 학교를 농락하듯 수업에 잠시 출석했다가 다시 나오지 않는 꼼수로 제적을 피했다"며 "정부와 대학은 원칙대로 학칙을 적용해 정말로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자리를 줘야 한다"고 했다.

의대생 단체는 계속 수업을 거부하며 대정부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의대생 단체인 의대협은 9일 오석환 교육부 차관 등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면서 "교육부가 대학에 의대생들 휴학계를 반려하게 하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은 제적 유급 처분을 내리도록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그래픽] 의대생 유급·제적 대상 현황 기고자 : 최인준 기자 김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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