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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달러, 이달 들어 10% 널뛰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외환시장이 급등락하는 배경엔 관세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 가치 절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이달 들어 미 달러화에 대한 가치가 10% 가까이 널뛰기하고 있는 대만 달러가 대표적이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대만 정부가 미국 압력에 밀려 대만 달러 가치 절상(환율은 하락)을 방치할 것이란 관측이 번지자 수출 기업 등이 달러를 내다 팔아 환율이 급락했다가, 당국이 이를 부인하자 환율이 다시 올라갔다. BNP파리바의 외환 총괄 주 왕은 CNBC에 "미국에 대한 흑자 폭이 큰 나라일수록 '플라자 합의 시즌2'에 대한 두려움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고, 대만 달러가 그 리스트의 가장 상단에 있다"고 했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미국·일본·서독 등이 무역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목적으로 엔화 가치와 마르크화 가치 절상(달러 가치 하락)에 합의한 것이다. 엔화와 마르크화 가치가 높아지면 일본·서독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낮아져 상대적으로 미국 기업 경쟁력이 나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또한 미국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제2의 플라자 합의'로 불리는 일명 '마러라고 합의'를 추진할 것이란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약(弱)달러 강조하는 트럼프 정부

미국 달러화가 너무 고평가되어 있고,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은 트럼프 정부의 정책 목표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인 스티브 미란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글로벌 무역 시스템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라는 보고서에서 미국의 '쌍둥이 적자(무역·재정 적자)'가 기축통화인 달러의 구조적 강세 때문이라는 주장을 폈다.

미국 정부의 무차별 관세 부과도 '약달러' 유도를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미란 보고서는 "미국이 일련의 징벌적 관세를 매겨 놓으면, 유럽과 중국이 관세 인하를 위해 (달러 약세를 위한) 미국과의 통화 협정을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세를 먼저 부과한 후 이를 완화해 주는 대가로 달러 약세에 동의하게 하는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트럼프식 약달러는 불가능

하지만 40년 전 플라자 합의와 비슷한 형태의 마러라고 합의는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플라자 합의는 당시 미국 군사 동맹국인 일본과 서독의 협력 때문에 가능했다. 마러라고 합의가 맺어지려면 관세전쟁을 선포한 미국이 상대국인 중국과 유럽연합(EU) 등을 제압하거나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과 EU는 일본이 플라자 합의 후 버블 경제로 신음하다가 '잃어버린 30년'의 장기 침체에 빠졌던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관세전쟁이 원래 목적과는 반대로 강달러를 유도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관세 때문에 물가가 오르면 미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데, 통상 미국 금리 인상은 달러화 강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이 원하는 게 강달러인지 약달러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고 했다.

글로벌 외환시장도 트럼프 입맛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관세전쟁이 본격화돼 글로벌 무역이 줄어들면 한국을 비롯한 수출국들의 경제가 타격을 입고 원화를 비롯한 신흥국 통화가치가 약세(달러는 강세)를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설령 트럼프 의도대로 달러가 약세로 돌아선다고 해도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마러라고 합의가 실제 이뤄져 달러 가치가 15% 하락하면 미 국채를 들고 있는 외국인의 4년 치 이자 수익이 모두 사라지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하는데, 누가 미 국채를 사겠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 채권 금리가 올라 미국이 지불해야 하는 이자 비용이 늘어난다. 이미 엄청난 재정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금리 상승을 감당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미란 보고서는 "미국의 안보 우산을 제공받는 국가들은 미국이 100년 만기 장기 국채를 찍어 내더라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란의 주장은 주류 경제학자들의 거센 비판 대상이 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에는 미란 자신도 '미란 보고서'를 통해 제기했던 아이디어와 거리를 두고 있다"고 전했다.

☞마러라고 합의·미란 보고서

마러라고 합의: 미국이 관세와 안보 우산을 무기로 달러화 약세에 대한 다자간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구상. 1985년 미국이 일본·서독과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기 위해 체결한 '플라자 합의'에 빗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플로리다 저택 이름인 마러라고에서 따왔다.

미란 보고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인 스티브 미란이 지난해 11월 투자회사 허드슨베이캐피털 수석전략가로 있을 때 작성한 보고서. 미국이 무역·재정 적자를 해결하려면 징벌적 관세로 겁을 준 후, 환율 조정으로 약달러를 유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픽] 주요 아시아 통화 가치 변동 기고자 :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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