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양해부터 구한다. 한동안 '함께 신문 읽어요' 취지에 안 맞게 살았다. 오랜 습관인 신문 읽기를 건너뛴 것이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속 시끄러운 일이 있었다. 인생이 꼬일 때 허우적대 봐야 가라앉지 않나. 특히나 정치가 소란스러운 시절이다. 머릿속이 소음으로 꽉 찼다. 이참에 세상과 통하는 스위치를 꺼 버렸다.

문제는 내가 종이 신문을 구독한다는 것이다. 만약 방송이나 인터넷으로만 뉴스를 접한다면 어땠겠나. 못 보고 지나친 양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지 못했을 터. 하지만 종이 신문은 매일 아침이면 반드시 배달된다. 한 부, 두 부, 미뤄둔 루틴이 그렇게 서재 한구석에 쌓여갔다.

그런데, 롤러코스터의 노래가 떠오르는 순간이 왔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아직도 너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사랑해' 다만 이별한 연인의 사진이 아니라 신문 더미를 바라봤을 뿐,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밀려왔다.

어떤 이는 아무리 전자책이 편리해도 종이책이 좋단다. 갓 구운 빵 같은 종이 냄새, 손으로 한 장씩 넘길 때 바스락거림이 좋단다. 신문이 내게도 그런 존재였다. 잉크 냄새에서 지적 만족을 채웠고, 현관 앞 신문을 주워 들며 하루의 시작을 알았다. 눈길을 피해도 느껴지는 물성, 신문은 조용히 한구석에서 나를 기다렸다.

이대로 두면, 비 오는 날 방충망 닦는 데나 쓰일 운명이다. 그럴 순 없다. 결국 날짜 지난 신문 한 부를 펼치며 짧은 잠수를 끝냈다. 그리고 어쩌다, '어쩌다 마주친 문장'을 마주쳤다.

"젖은 옷은 말리면 된다./ 지는 꽃은 다시 피면 된다./ 투덜대지 말고, 춤을 추자./ 빗속에서 춤추는 사람을 당할 자 세상에 없으니."

다른 면을 펼치자 녹화 때 출연자로 뵙던 분의 글이 오늘따라 날카롭다. "마라탕 찾는 세대에게 보신탕 권한다"며 요즘 정치를 꼬집는다. 맞다. 내가 해온 일은 세상의 변화를 읽는 것이었다. 변화를 부정하는 순간, 편한 옷만 고집하는 아저씨 신세가 되는 게 어디 정치뿐이랴.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신문 속에 나온 장소에 가고 싶다. 일본엔 산속 도서관이 있단다. "할 수 있다"만 강조하는 세상, 그곳엔 "할 수 없다 말해도 괜찮다"는 책들이 있단다. 지금은 내게도 그런 마음을 허락하고 싶다. 산다는 게 항상 잘할 수만은 없다. 그래서 솔직히 말한다. 신문 읽기를 놓쳤다고.

오래전에 누군가 인터넷에 내 사주 풀이를 올렸다. '벚꽃 같은 팔자'라 안타깝다나. 한철 화려하게 폈다가 금방 질 거라나. 미디어 환경이 많이 달랐던 시절, 초고속으로 메인 앵커가 된 건 나도 못 믿을 일이었지만, 앞으로 좋을 일 없다니… 콱 박혔다.

"다 져 버린 꽃이라고? 무슨 소리야! 꽃은 매년 다시 핀다고!"

나를 일으킨 건 당찬 마음가짐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흘러 신문에서 "지는 꽃은 다시 핀다"는 문장을 만난 것이다. 잠시 멈춘 것 같아도 괜찮다. 변화를 받아들이자. 이왕이면 즐기자. 비 오는 날 춤추는 자, 세상에 당할 자 없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지난 세월을 견디지 않았는가. 만약 밀린 신문을 버렸다면 이 소중한 문장들을 영영 모를 뻔했다. 냉철한 활자 속 숨은 위로는 '츤데레'처럼 속이 깊다. 이러니 신문 읽기를 사랑할 수밖에.

참, 이 칼럼에 등장한 모든 비유는 밀린 신문 한 부, 정확히 조선일보 4월 25일 자에서 다 나왔다. 놀랍지 않은가. 기고자 : 조수빈 방송인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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