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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예산 줄인 트럼프, 중국에 '인재 가로챌 기회' 줬다

나노(10억분의 1)m 굵기 금속선으로 뉴런(뇌 신경세포)의 신호를 감지하는 기술을 개발한 찰스 리버는 세계 최고의 나노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하버드대 화학·생화학과장도 지낸 그가 이달 중국 선전시의 칭화대 국제대학원에서 최고 교수 직급으로 직무를 시작했다.

5일 미국 보스턴 글로브 등에 따르면, 리버 교수는 지난달 28일 환영식에서 "중국 선전시의 혁신 정신과 역동성은 이곳을 글로벌 과학 허브로 만들겠다는 나의 비전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했다. 사실상 미국에 완전히 등을 돌리고 중국 편에 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리버 교수는 중국 정부의 해외 인재 영입(천인계획)을 돕고 금전적 지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에도 미국에 머물렀던 그가 올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자, 연구 터전을 중국으로 옮긴 것이다. 트럼프 취임 이후 예산 삭감 등으로 연구 여건이 악화되면서, 미국을 떠나는 과학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은 파격적 혜택을 내세우며 이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美 과학 예산 대폭 삭감, 반기는 中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반인 대수 이론 전문가로 꼽히는 린화신 오리건대 교수는 지난 3월 상하이 수학·융합과학 연구소(SIMIS)로 소속을 옮겼다. 기초 연구뿐 아니라 응용 수학에도 정통한 그가 작년에 문을 연 중국 연구소에 교수로 합류한 것이다. 프린스턴대 항공우주공학 석사, 인디애나대 응용수학 박사 출신의 첸민 퍼듀대 교수도 지난달 닝보 동방이공대 교수로 적을 옮겼다.

중국인 연구자들이 최근 줄줄이 미국을 떠나는 배경에 트럼프 정부의 연구 예산 감축이 있다. 백악관은 지난 2일 발표한 2026 회계연도 예산안에 따르면,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예산의 약 56%를 깎을 계획이고, 미 국립보건원(NIH) 예산은 40% 삭감한다는 목표다. 항공우주국(NASA) 예산도 24% 줄일 예정이다.

전례 없는 과학 예산 삭감에 미국의 연구자들은 이른바 '학문적 망명'을 꾀하고 있다. 연구 개발에 차질이 생기자, 제대로 지원받을 수 있는 국가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의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75%가 탈(脫)미국을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지난달 미국의 과학자, 의학자, 공학자 1900여 명은 "트럼프 정부가 미국의 과학적 역량을 심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비판 서한에 서명했다.

미국에서 유학한 중국인 과학자들을 귀환시키기 위해 공들여온 중국 정부는 이번 논란을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미국 내 중국인뿐 아니라 외국 과학자들도 적극적으로 영입할 명분과 계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패권 되찾으려는 유럽

유럽 등 선진국도 인재 유치 경쟁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5일 '과학을 위해 유럽을 선택하세요(Choose Europe for Science)' 콘퍼런스에서 2027년까지 글로벌 연구자 유치를 위해 5억유로(약 8000억원)를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과학에는 여권도 없고, 성별도 없고, 인종도 없고, 정당도 없다"며 "유럽은 외국 연구자들을 유치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달 프랑스는 '과학을 위해 프랑스를 선택하세요'라는 인재 영입책을 시작했다. 당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세계 연구자들이 프랑스와 유럽을 선택하길 바란다"고 했다. 특정국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미국의 인재를 향해 손짓한 것이다. 이미 올 초 프랑스 엑스마르세유 대학의 글로벌 연구자 지원 프로젝트에는 미국의 연구자 300여 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정부는 올해 5000만파운드(약 920억원)를 투입해 해외 과학 인재 유치에 나설 예정이다. 이는 연구 보조금과 이주 지원금 등이 포함된 예산이다. 이탈리아 보코니대의 마르타 프라토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두뇌 유출이 미국의 혁신과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최근에는 유럽이 역으로 인재 유치를 강화하는 정책을 통해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래픽]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떠난 주요 연구자 / 미국 떠나는 인재 영입 위한 각국 전략 기고자 : 곽수근 기자 김효인 기자 뉴욕=윤주헌 특파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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