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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무인도 꽃사슴 '딜레마'

지난달 23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소쿠리섬'. 배에서 내리자마자 갈색 몸에 흰 점이 박힌 꽃사슴 5~6마리가 몰려다니며 관광객들이 주는 당근과 사과를 받아먹는 모습이 보였다. 캠핑 장비를 챙겨 온 관광객들은 "사람 반, 사슴 반"이라며 연신 꽃사슴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창원시 관계자는 "꽃사슴 덕에 관광객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주변 섬으로 건너가 고추밭, 배추밭을 다 헤집어 놓는 통에 민원도 적잖다"며 한숨을 쉬었다.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꽃사슴이 주민들에겐 텃밭을 초토화하는 '골칫거리'라는 것이다.

진해구에 따르면, 소쿠리섬에는 꽃사슴 등 사슴 60여 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육지에서 1.5㎞ 떨어진 작은 무인도다. 육지에서 보면 소쿠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소쿠리섬이라고 불린다. 서울 여의도공원의 절반 정도 크기다. 진해 명동선착장에서 배로 10분이면 도착한다.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에 꽃사슴이 사실상 이 섬의 주인이다.

처음부터 꽃사슴이 살았던 건 아니다. 육지에서 가깝고 썰물 때면 남쪽의 '곰섬'으로 길이 이어져 지역 주민만 알음알음 찾는 명소였다. 그런데 17년 전인 2008년, 당시 진해시가 '대만 꽃사슴' 10마리를 풀었다.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꽃사슴에게 소쿠리섬은 천국이었다. 사람뿐 아니라 들개 같은 천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섬 서쪽엔 소나무 숲이 우거져 몸을 숨기고 새끼를 낳아 기르기 좋았다. 반대로 동쪽엔 꽃사슴이 즐겨 먹는 칡과 억새가 천지였다.

"꽃사슴이 사는 무인도"라고 소문이 나면서 실제로 소쿠리섬은 '캠핑 명소'가 됐다. 주말이면 캠핑족 200~300명이 이 섬을 찾아 텐트를 친다. 휴가철엔 600~700명까지 관광객이 몰린다. 소쿠리섬에서 만난 김모(39·부산)씨는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꽃사슴을 가까이 볼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경남 김해에서 왔다는 정모(44)씨는 "꽃사슴과 함께 먹고 잘 수 있는 이국적인 캠핑장"이라고 했다.

문제는 꽃사슴의 강한 번식력과 뛰어난 수영 실력이었다.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란 꽃사슴은 금세 60여 마리로 불어났다. 개체 수가 늘자 아늑했던 섬이 좁아졌다. 또 번식기가 되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결국 일부 무리가 약 500m 떨어진 섬 '우도'로 헤엄쳐 건너가기 시작했다. 옥수호 경남야생생물보호협회장은 "꽃사슴은 수영을 매우 잘해 먹이나 짝짓기 상대를 찾아 바다도 건넌다"며 "소쿠리섬에서 7㎞ 떨어진 거제시 저도에서도 꽃사슴이 발견됐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달 한 관광객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꽃사슴 바다 수영'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소쿠리섬 꽃사슴이 헤엄쳐 바다를 건너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꽃사슴이 건너간 우도는 무인도인 소쿠리섬과 달리 50여 가구가 사는 곳이다. 대부분 집 앞 텃밭에 채소를 키우는데, 소쿠리섬 출신 꽃사슴들이 밤낮없이 이를 먹어치우면서 주민들 먹을 것이 없어졌다. 우도 주민 홍재홍씨는 "사슴이 텃밭을 다 엎어 놓은 탓에 상추, 배추가 남아나질 않는다"고 했다. 텃밭 주변에 녹색 그물망을 이중, 삼중으로 둘러봤지만 소용이 없다고 한다. 꽃사슴이 뿔이나 이빨로 그물망을 쉽게 찢는 탓이다. 진해구에 따르면, 올해 우도에서만 사슴 관련 민원이 10건 접수됐다. 지난달 환경부는 꽃사슴을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했다.

창원시는 '꽃사슴 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일단 지난달 꽃사슴이 우도 등 다른 섬으로 건너가지 못하게 소쿠리섬 주변에 울타리를 쳤다. 바다에는 물에 뜨는 장애물을 설치했다. 또 과도한 번식을 막기 위해 수컷은 중성화 수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컷 5마리 가 수술을 받았다. 꽃사슴 진드기에 사람이 물리는 것을 막기 위해 예방접종도 진행 중이다. 창원시 관계자는 "사람이 사는 섬에서 사슴 피해 신고가 발생할 경우 일단 포획할 계획"이라며 "관광객과 주민, 사슴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 소쿠리섬 꽃사슴은… 기고자 : 창원=김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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