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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지지 받은 이승만 대통령도 국회에 발목 잡혔다

미군정은 1948년 5·10 총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위해 노진설 대법관을 국회선거위원장으로 선임했다. 하지 사령관의 이 '우연한' 임명은 이후 대한민국 선관위원장을 대법관이 겸직하는 기형적인 관례를 낳았다. 선거 결과 4·3 사건으로 당선자를 내지 못한 제주도 2개 선거구를 제외한 전국 200개 선거구에서 198명이 당선되었다. 무소속 85석, 대한독립촉성국민회(독촉) 54석, 한국민주당(한민당) 29석, 14개 군소정당 30석이었다. 독촉은 정당이라기보다 이승만 지지 세력의 느슨한 연합체였다. 정당으로서 정체성과 결속력을 갖춘 정치 집단은 한민당이 유일했다. 실제 의정 활동 성향은 한민당 65~70석, 독촉 60~65석, 무소속 55~60석 정도였다.

노진설 선거위원장의 소집으로 5월 31일 중앙청 국회의사당에서 제헌국회가 개원했다. 미군정은 역사적인 이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경축했다. 중앙청에서 서울시청까지 세종로, 태평로 일대에는 축하 인파가 운집했다. 하지만 이날도 좌익 시위대는 "단정(單政)을 쳐부수자!" "UN위원단·미군 철수하라!" 구호를 외치고 삐라를 살포하며 전국적으로 소요를 일으켰다.

노진설은 "임시의장으로 최고 연장자인 이승만 의원이 어떻겠느냐?" 제안했고, 의원들은 박수로 동의했다. 의장석에 오른 이승만의 첫 일성은 "우리의 자주독립이 사람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닌 이상 종교는 다르더라도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종로갑구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였다.

이윤영은 평양에서 목회를 한 목사였고, 소련 군정하 북한에서 조선민주당 부당수로 활약하다가 당수 조만식이 소련군에 연금된 후 월남했다.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 환희와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아멘." 이승만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제헌국회는 기독교는 물론 불교, 유교, 무교 국회의원들이 다 함께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이어서 국회임시준칙에 따라 의장단 선거에 들어갔고, 이승만이 188표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5·10 총선거에는 단선·단정을 반대한 좌익, 김규식계 중도파, 김구계 일부 우익이 참여를 거부했다. 그 때문에 이승만은 제헌국회 의원 중 전 국민적 지지를 받는 유일한 정치 지도자였고, 대통령으로 추대할 수 있는 한 명뿐인 명망가였다. 개원 첫날 국회의장으로 선출될 때까지만 해도 이승만은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자신이 구상하는 이상적인 대한민국을 마음껏 만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원대한 구상은 헌법 제정 첫걸음부터 암초에 부딪혔다.

헌법기초위원 30인을 선발하기 위한 전형위원 10인은 남한 8도 대표와 서울시, 제주도 대표가 선정되었다. 그러나 전형위원이 선정한 기초위원 30인 중에는 한민당 중진 서상일, 허정 등 전형위원 4인이 포함돼 있었다. 이승만 의장은 "전형위원이 자신을 기초위원으로 선정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며, 원안의 채택 여부를 표결에 부쳤다. 이승만이 거부 의견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표결 결과는 '원안 접수'였다.

기초위원은 유진오·권승렬 등 법학자, 법률가 10인을 전문위원으로 선정해 그들이 마련한 '헌법 초안'을 심의했다. 초안은 고려대 교수 유진오가 주도한 유진오-행정연구위원회 공동안을 '심의 원안'으로, 과도정부 법제차장 권승렬이 주도한 법전편찬위원회 안을 '참고 안'으로 삼았다. 유진오는 경성제대 법문학부 제1기 수석 입학, 수석 졸업한 수재였고, 젊은 시절 사회주의에 심취했다가 전향한 이력이 있었다. 젊은 시절 소설가로 활약할 때는 경성제대 1년 후배 이효석과 함께 '동반자 작가'로 불렸다.

유진오가 마련한 원안은 대통령을 행정부 수반으로 두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으로 조직된 국무원이 국무 전반에 관한 의결권을 행사하는 의원내각제였다. 유진오는 헌법학자로서 양심상 "대한민국이 대통령제를 채택해서는 국회와 정부가 대립해 날이 저물도록 옥신각신하다가 나라를 망치기(아니면 독재국가화하기) 꼭 알맞은 것"('헌법기초회고록')이라 생각했다. 의원내각제는 대통령에 도전할 만한 인물이 없었던 한민당의 이해에도 부합했다. 한민당은 이승만을 상징적인 국가원수로 추대하고, 김성수가 국무총리를 맡아 국정을 장악하려 했다.

권력구조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이승만은 기초위원회 회의장을 몸소 찾아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국정 전반을 책임져야 한다"는 신념을 밝혔다. 그럼에도 6월 21일 기초위원회는 기어이 의원내각제 헌법 초안을 의결했다. 그날 오후 이승만은 기초위원회를 찾아 "만일 이 초안이 그대로 국회에서 헌법으로 채택된다면, 나는 어떠한 지위에도 취임하지 않고 민간으로 남아서 국민 운동이나 하겠소"라고 선언했다.

이승만의 폭탄선언에 화들짝 놀란 한민당 간부와 한민당계 기초위원들은 그날 밤 김성수의 집에 모여 대통령제로 헌법 초안을 뜯어고쳤다. 전문위원직을 사임하겠다고 버티던 유진오는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임명할 때 국회의 승인을 얻게 하고, 국무총리가 국무위원의 제청권을 가지는 절충안을 제시해 끝내 관철했다.

7월 17일 의원내각제 요소가 추가된 대통령제 제헌헌법이 공포되었고, 20일 국회에서 재석 의원 196명 중 180표를 얻은 이승만이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한민당은 김성수를 국무총리에 추천하고, 핵심 부서 장관 7명을 한민당 인사로 임명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거국내각을 구상하던 이승만 대통령은 "이북 출신이면서 부유 계급 출신은 아닌" 이윤영을 총리로 지명했다. 27일 총리 인준안은 가 59표, 부 132표, 기권 2표로 부결되었다. 한민당의 발목 잡기에 굴하지 않고 이승만은 김성수와 대비되는 이력을 지닌 광복군 참모장 출신 이범석을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국무총리 인준안은 정부 수립을 불과 2주 앞둔 8월 2일 가 110표, 부 84표로 통과되었다.

그 후로도 이승만 대통령이 지명한 국무총리는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줄줄이 낙마했다. 초대 국무총리에서 낙마한 이윤영만 해도 1950년 4월 재차 지명되었지만 가 68표, 부 84표로 또다시 낙마했다. 1952년 10월 이윤영이 국무총리로 세 번째 지명되었을 때는 여당인 원외자유당 의석이 66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 35표, 부 128표로 부결돼 이승만 대통령에게 망신을 톡톡히 안겨주었다. 의원내각제 요소가 추가된 '한국적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국회를 지배할 만한 힘이 있으면 '독재'로 흐르고, 대통령이 국회에 휘둘리면 '식물 대통령'이 되고 마는 모순된 권력구조였다. 기고자 :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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