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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마스의 몰락을 원한다." 이스라엘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다. 최근 가자지구 주민 수천 명이 하마스 퇴진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에서 쓰인 구호다. 일주일 전 북부 베이트 라히야에서 시작된 시위는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사복을 입은 하마스 대원이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다 되레 분노한 군중에게 구타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자 주민들의 반(反)하마스 시위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집권 여당 파타흐에 승리를 거둔 하마스는 권력 다툼 끝에 20년 가까이 가자지구를 철권통치해 왔다. 가자지구의 정치·군사·사회적 기능을 완전히 장악해 주민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감시했다. 2019년 극심한 실업난과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항의 차원에서 시위를 조직하자 하마스는 이를 가혹하게 진압했다. 하마스를 비판한 인권 운동가나 언론인들은 체포돼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이뿐만 아니다. 하마스는 무력 투쟁만이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한 길이라는 '대의'를 앞세워 주민들을 사지로 내몰아 왔다. 2023년 10월 7일은 그 정점이었다. 이스라엘 민간인뿐만 아니라 외국인까지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납치했다. 명분을 얻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폐허로 만들 것이라는 걸 과연 몰랐을까. 지상 작전과 공습으로 18개월 동안 5만여 명이 죽고 수백만 명이 터전을 잃었다. 야히아 신와르 등 하마스 지도부는 민간인들이 이스라엘의 폭격에 속수무책으로 스러지는 동안 땅굴에 몸을 숨기기 급급했다.

가자 주민들의 봉기는 더 이상 하마스에 삶을 저당잡히지 않겠다는 절규다. 지난달 휴전이 파기되고 이스라엘이 다시 공습을 재개하면서 이미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압박하기 위해 구호물자 반입을 원천 봉쇄한 탓에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 먹지 못하는 이들이 도처에 널렸다. 사람들은 매일 죽음을 목도하며 체득했다. 삶보다 우선하는 대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만약 시위가 가자지구 전역으로 번진다면, 어쩌면 전쟁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끝날 수 있을지 모른다. 주민들의 반발에 하마스가 남은 인질을 모두 석방하고, 종래에는 가자지구에서 떠나는 것이다. 서방이 지원하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이미 하마스에 "가자지구 통치를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도 대놓고 이런 시나리오를 바라고 있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 장관은 시위대를 독려하며 "가자지구에서 하마스가 철수하고 모든 이스라엘 인질을 즉시 석방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전쟁을 멈추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다만 이스라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가자 주민들이 하마스에 반기를 든 것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진짜 평화를 원한다면, 그 열망을 강제 합병 같은 폭력으로 다시 짓밟아선 안 될 일이다. 기고자 : 김지원 텔아비브 특파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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