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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 전쟁 3주년 맞아 갈등 표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3주년을 맞은 24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는 전쟁의 빠른 종식을 촉구하거나 침공국 러시아를 규탄하는 결의안이 잇따라 채택됐다. 그러나 회의장에서는 러시아와의 직접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온 자유 진영 국가 간의 갈등이 표출됐다. 전후 80년간 미국 주도로 굳건히 결속해온 자유민주주의 동맹이 트럼프 2기가 밀어붙이는 미국 우선주의 전략에 빠르게 균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24일 전쟁의 신속한 종식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찬성 10표, 기권 5표로 채택했다. 안보리 결의는 유엔에서 나오는 결정 중 가장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다. 상임이사 5국(미국·러시아·영국·중국·프랑스) 중 한 나라의 반대도 없어야 하고 전체 이사국 15국 중 9국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상임이사국 중 영국과 프랑스가 기권했고 2024~2025년 비상임이사국을 맡고 있는 한국은 찬성표를 던졌다.

미국이 제출한 이번 안보리 결의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핵심 표현이 빠져 발의 단계부터 논란이 됐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과의 직접 협상으로 전쟁을 조기에 끝내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영국·프랑스는 최종 투표 연기를 시도하고, 우크라이나의 주권·독립·영토 보전 약속 관련 문구도 넣으려 했지만 미국이 사실상 러시아·중국 편에 서는 구도가 되면서 결의안 통과를 막지 못했다.

그동안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북한 핵 도발 등 각종 현안에서 미국·영국·프랑스의 자유 진영과 러시아·중국의 권위주의 진영으로 갈리는 양상을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이 러시아·중국에 동조하고 미국의 오랜 우방인 영국·프랑스가 반발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두 나라가 미국 태도에 반발하면서도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를 감안해 반대표로 결의안 통과를 무산시키는 대신 기권표를 던지는 고육책을 썼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상임이사국인 한국은 소말리아·시에라리온·알제리·파키스탄 등 6국과 함께 찬성한 반면, 그리스·덴마크·슬로베니아 등 3국은 영국·프랑스와 함께 기권했다. 한국이 기권하지 않고 찬성표를 던진 데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전쟁 조기 종식을 촉구하고 있는 등 우리 입장과 상충되지 않는다는 점, 북한 문제 관련 한미 간 긴밀한 공조의 중요성 등도 고려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도로시 셰이 유엔 주재 미 대표부 차석 대사는 이날 "이 결의안을 활용해 우크라이나·러시아, 그리고 국제사회를 위한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주년이었던 지난해 이맘때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당시 유엔 주재 미 대사가 유엔 총회 연설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법적이고 도발적이며 잔인한 전면 침공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편에 서서 국제 질서를 옹호해야 한다"고 호소했던 점을 감안하면 정권 교체 뒤 미국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니콜라스 드리비에르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는 "공격이 보상받고 정글의 법칙이 승리한다면 세계 어디에도 평화·안전이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결의안 통과가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 사이에 분열이 있음을 드러냈다"고 했다.

같은 날 유엔 총회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도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자유 진영이 러시아를 두둔하는 국가들과 갈등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이 같은 편에 서는 이례적인 상황까지 벌어졌다. 유엔 총회는 이날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면 침공을 규탄하는 별도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우크라이나 주도로 50국이 공동 발의한 결의안은 찬성 93표, 반대 18표, 기권 65표로 가결됐다.

그런데 미국은 이 과정에서도 신속한 종전 필요성을 강조하고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보전 필요성 등 러시아에 불리한 내용을 뺀 자체 결의안을 제출했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들이 반발했고, 결국 우크라이나 입장이 반영된 내용으로 통과됐다. 채택된 총회 결의안은 전쟁을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략으로 규정했고,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러시아 병력의 즉각 철수를 요구했다.

이 결의안에 대해 한국·일본 등 자유 진영 국가 다수가 찬성표를 던졌다. 반면, 반대표를 던진 18국에는 침공국인 러시아, 러시아를 지지하는 군사 동맹 벨라루스, 러시아에 직접 파병한 북한과 함께 미국도 포함됐다. 그동안 유엔에서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규탄과 제재를 주도해왔던 미국이 북한과 함께 러시아를 편드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유엔 비상임이사국 중 한국·가이아나·소말리아·시에라리온 등 4국은 미국 의중이 담긴 안보리 결의안과 우크라이나 입장이 관철된 총회 결의안의 내용이 상충됨에도 모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총회 결의는 유엔이 채택한 공식 문서로, 안보리 결의만큼의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사회 여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표결을 앞두고 마리아나 벳사 우크라이나 외교 차관은 "우리는 (러시아의) 침략을 비난하고 망신을 줘야지 보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재확인한다"며 "단지 평화를 향한 열망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엔총회의 입장을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반면 도로시 셰이 유엔 주재 미 대표부 차석 대사는 "이전 결의가 전쟁을 끝내는 데 실패했다"며 "미래를 보는 단순한 역사적 성명, 전쟁을 끝낸다는 하나의 단순한 아이디어에 집중하는 결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과 러시아 주도의 종전 협상에 우크라이나가 반발하면서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이 유엔 총회장에서도 재현된 것이다.

[그래픽] '러시아의 우크라 침략' 지운 유엔 안보리 vs 언급한 유엔 총회 기고자 :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김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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