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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철도의 밤… 지금도 그곳엔 눈밭 위로 기차가 달린다

세계적으로 문학과 관련된 장소가 여럿 있다. 유명 작가들의 생가 또는 작품의 배경이 된 마을들이 대표적이다. 50여 국에서 번역되고 1억부 이상 팔린 소설 '빨간 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섬도 그중 하나다. 소설의 배경이 된 집은 현재 이 섬의 제일 관광 명소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詩) '가지 않은 길' 역시 많은 사람을 아무것도 없는 미국 동부 버몬트의 숲으로 안내한다. 방문객들은 평범한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시의 문구를 탐미하는 또 다른 경험을 만끽한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천 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 중 하나로 선정한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가 있다. 그는 일본 동북 지방 이와테현의 하나마키(花卷) 출신 농예과학자다. 농업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시, 동화, SF(공상과학) 등 장르를 망라한 작품 수백 편을 남겼다. 그의 시 '비에도 지지 않고'는 우리나라로 치면 윤동주의 '서시'와 동등한 수준으로 국민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주문이 많은 음식점' 등 의인화된 동물이 등장하는 재미난 소설이 여럿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의 대표작은 1934년에 발표된 '은하 철도의 밤'이다. 이 소설은 후일 기계 인간이 되어 영원한 삶을 얻으려는 소년과 동행하는 여인 메텔의 우주 여정을 다룬 애니메이션 '은하 철도 999'의 영감이 됐다.

일본 최초의 SF 작가라는 호칭에 걸맞게 은하수를 기차로 여행한다는 낭만적인 설정은 획기적이고 또 신선했다. 밤하늘의 푸르스름한 빛 속을 끝없이 달리는 날아다니는 기차. 그 매력의 본질은 증기기관차라는 점이다. 당시의 증기기관차는 오늘날로 치면 우주선 정도의 테크놀로지와 감동의 대상이었다.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드보르자크가 매일 기차역에 나가서 증기기관차가 수증기를 뿜으며 들어오는 모습을 넋 놓고 구경하던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소설에는 은하의 물, 수정 같은 모래, 붉은 노을의 투명한 아름다움 등이 묘사되어 있다. 우주와 천체, 지질, 음악 등 다방면에 걸친 연구를 통해 공생의 가치, 그리고 자연과의 교감을 추구했던 작가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그 모든 문장은 또한 자신이 살던 시골의 자연을 사랑하고 관찰하던 작가의 습관에 기반을 두고 집필되었다. 하나마키의 미야자와 겐지 기념관에는 그가 주변에서 하나씩 모은 암석, 지역의 날씨, 토양과 지질을 탐구한 도감 등이 상세히 전시되어 있다.

작가들은 장르에 따라 종종 로맨스 소설 작가, SF 소설 작가, 추리 소설 작가 등으로 분류된다. 이들이 구상하는 스토리의 배경은 여러 곳이다. 하지만 장르에 관계없이 시골 또는 작은 마을이 많이 등장한다. 시골이 작가들에게 늘 영감이 되고, 가난한 곳에서 문학이 발달하는 건 세계 공통인 것 같다. 너무나 조용하고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자연을 관찰하게 되고, 꿈꾸며 스토리를 만든다. 고요하고 가난한 아일랜드에서 탄생한 걸리버 여행기나 미국 작은 시골 마을의 일상을 서정적 언어로 묘사한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처럼 말이다.

미야자와 겐지가 살면서 집필했던 하나마키 역시 가난했던 시골이다. 작가가 고향의 자연에 애정을 느끼며 향토에 젖어 집필한 책 한 권이 이 한적한 시골로 독자들을 부른다. '은하 철도의 밤'에는 작은 마을의 다리를 감상하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와테현의 철도 회사는 이 소설을 인용해 '이와테 은하 철도(IGR·Iwate Galaxy Railway)'라는 기차를 운영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기차가 건너가는 아치교 앞 작은 텃밭에 서서 조용히 마을의 풍경을 감상한다. 바로 옆 국도 휴게소 미치노에키(道の驛)에는 은하 철도를 테마로 만든 상품이 가득하다.

문학은 그 자체의 아름다운 언어로 본연의 가치를 간직한다. 더불어 배경이 된 마을의 분위기를 새롭게 느끼게도 한다. 문학 작품을 읽으며 상상하고 마음에 담았던 장소를 직접 찾아가면 그곳이 마음속에 새로운 지도로 자리 잡는다. 책을 읽고 찾아왔지만 이 장소가 다시 책이 되는 느낌이다. 많은 사람이 그저 평범하게 보고 지나치는 사물과 풍경을 상세히 관찰하고 그 감회를 언어로 묘사, 스토리를 만들어준 작가들 덕분일 것이다. 그들이 꿈꾸고 영감을 얻고 바람을 느끼며 창의적인 시간을 보낸 시골을 걷는 시간은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기고자 :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214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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