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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줍서."

중년 사내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며 주문했다. 잠시 후, 백발의 남자가 함박눈과 함께 들어왔다. "이 눈 속에 남원에서 왔수까." 주인이 앞서 온 사내에게 반찬과 소주 한 병을 들고 가며 반겼다. 칠순의 안주인은 '오늘은 남자 혼자 오는 날인가'라며 나를 보고 웃었다. 그렇게 사내 세 명이 꿩국수를 먹겠다고 눈발이 휘날리는 입춘에 동문시장 한 식당에 앉았다. 남원에서 온 노인은 병원에 왔다가 들렀고, 중년 남자는 함덕 수월봉 인근에서 아침 운동을 하다가 버스로 나왔다. 꿩국수가 뭐길래.

안주인은 중년 남자에게 함덕에 양포수라 불리는 꿩 사냥꾼이 있었는데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엽총으로 꿩을 잡는데 살이 온전해 국숫집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때는 야생 꿩으로 국수를 만들었기에 식당마다 좋은 꿩을 구하려 했다. 지금은 사육한 꿩을 이용한다. 주인은 꿩이 많았던 중산간 마을에 살았던 연유에 아버지가 말을 타고 꿩을 잡는 것을 보곤 했다. 꿩 사냥을 하는 날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섰다. 그리고 잡은 꿩은 집집마다 몇 마리씩 나누었다. 그 꿩을 잘 보관해 두었다가 제물로 올리고, 꿩엿이나 국수도 만들었다. 그 사이 농협에서 근무한다는 여성 두 분이 들어왔다.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주인은 직접 메밀가루를 반죽해서 밀대로 밀어 칼국수를 만든다.

꿩이 많은 중산간에는 '뜬땅'이 많았다. 물기를 품지 못하는 푸석푸석한 땅이다. 이런 땅은 보리가 잘 자라지 않지만, 메밀은 소출이 괜찮았다. 게다가 봄과 가을 이모작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메밀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 제주다. 메밀은 잎은 푸르고, 줄기는 붉고, 꽃은 희고, 열매는 검고, 뿌리는 노랗다. 그래서 오방지영물로 귀하게 여겼다. 탐라입춘굿을 할 때, 메밀을 다른 곡물과 함께 제물로 올린다. 메밀은 꿩국수뿐 아니라 세미떡, 몸국, 나물무침, 볶음요리 등 다양한 음식에 이용된다. 또 어린줄기는 나물로 무쳐 먹고, 껍질은 베개 속에 넣기도 한다. 쌀이 귀한 제주에선 메밀이 주식이었다. 꿩을 삶은 육수와 제주 땅에서 자란 메밀에 토박이 안주인의 삶이 더해진 베지근한 꿩국수는 입춘 무렵에 맛있다. 기고자 :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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