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2000년대 초반, 줄기세포 연구자들은 인체의 모든 조직으로 분화 가능한 유도만능줄기세포인 배아 줄기세포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데 배아 줄기세포는 정자와 난자를 결합해서 배아를 만든 뒤에 이를 파괴해서 얻어냈고, 항상 생명을 파괴한다는 윤리적 논란이 따라다녔다. 반면에 성인 피부에서 얻을 수 있어 윤리적 문제가 없는 성체 줄기세포는 유도만능줄기세포가 아니었다. 당시 일본의 연구자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는 자신의 연구에 대한 강한 윤리적 압력을 느껴 (어린 딸이 윤리적 문제를 상기시켜 주었다고 한다) 배아 줄기세포를 포기하고 성체 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특정 유전자를 삽입해서 성체 줄기세포를 배아 줄기세포와 비슷한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고, 이 공로로 2012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에 연료 절감과 환경 보호 목적으로 도입된 미국의 청정대기법과 새 연비 기준은 자동차 배출 가스를 엄격하게 규제했다. 당시 새롭게 잡은 기준은 1리터당 연비 11.7㎞를 요구했다. 자동차 회사들은 처음에 이런 규제가 터무니없다고 비명을 질렀지만, 결국 촉매 변환기 같은 신기술을 발명해서 가스를 줄이고 연비 기준도 맞춰 나갔다. 특히 계속 높아진 연비 기준은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전기차처럼 새로운 자동차의 탄생을 유도했다.

규제는 기업의 이익 추구가 사회적 공공선을 무제한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목적을 갖는다. 흔히 규제는 혁신의 발목을 잡는다고 하지만, 역사를 보면 규제가 새로운 혁신을 낳는 경우도 많다. 전 세계의 AI 기업은 엔비디아가 만든 첨단 칩을 수백억~수조 원어치 사들여서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규제 때문에 첨단 엔비디아 칩을 수입하지 못한 중국의 한 작은 벤처가 값싼 저성능 구형 칩만을 가지고 챗GPT만큼 성능이 좋은 '딥시크'를 만들어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개인 정보 수집과 관련해 논란이 있지만 딥시크가 공개되던 날 엔비디아의 시총은 850조원이 증발했다. 이렇게 강한 규제는 강한 혁신을 낳는다. 단, 규제를 넘어 혁신을 꾀하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자에 한해서. 기고자 :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104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