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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 때처럼 막대한 돈 써서 각국 극우 정당 도울 가능성도

일론 머스크 미국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유럽 정치에 노골적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막대한 영향력과 부를 이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승리를 도왔던 방식으로 영국·독일 등 유럽 각국 선거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첨단 기술 분야의 혁신가 이미지와 거침없는 발언으로 X에서 2억명 넘는 팔로어를 거느린 '글로벌 초대형 인플루언서'다. 유럽 일각에서는 그가 대중 선동과 금품 살포 등을 통해 영국 노동당 정권을 조기에 무너뜨리고, 독일의 극우 성향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집권 시도를 돕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 "머스크가 최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다음 총선 전에 (총리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방안을 자신과 가까운 이들과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영국의 극우 성향 포퓰리즘 정당인 영국개혁당(Reform UK) 지지도를 끌어올려 노동당의 스타머 총리를 낙마시키는 방안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당의 인기가 식으면서 지난해 7월 조기 총선 당시 14%였던 영국개혁당 지지율은 최근 22%까지 상승했다. 같은 기간 40%대 후반이었던 노동당 지지율은 20%대 초·중반으로 떨어졌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은 총리의 인기가 떨어지면 당대표 사퇴나 조기 총선 등을 통해 총리가 교체되는 일이 흔하다.

머스크는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영국 정치에 노골적으로 간섭해 왔다. 스타머 총리가 과거 왕립검찰청장 시절 인종차별 논란을 피하기 위해 파키스탄계 갱단이 벌인 미성년자 성 착취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영국개혁당을 이끄는 나이절 패라지를 지원하겠다고 했다가 말을 바꾸는가 하면, 현재 수감 중인 반이민·반이슬람 극우 단체 영국수호리그(EDL) 수장 토미 로빈슨의 석방을 요구했다. FT는 "머스크가 극우 성향 인물들이 올리는 극단적 게시물을 공유하며 확산시키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머스크는 지난주 "찰스 3세 국왕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러 노동당 정부를 몰아내야 한다"는 게시물을 공유하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극우 정당 AfD가 머스크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다. 그는 9일 오후 X를 통해 알리스 바이델 AfD 공동 대표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라이브(생중계) 대담을 했다. 약 75분간 영어로 진행된 대담에서 머스크는 "바이델 대표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주장을 하는 인물"이라며 AfD의 노선이 극단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독일인들이 AfD를 지지하지 않으면 독일의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AfD를 적극 지지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이 대담은 그러나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델 대표는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총리 후보"(머스크), "아돌프 히틀러는 사회주의자였다"(바이델) 등 사실과 전혀 다른 발언이 나오면서 빈축을 샀다.

독일의 공영 국제방송인 DW는 이날 대담에 대해 "때때로 거짓말과 오해가 난무했고, 두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서로의 거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데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바이델 대표의 (부족한) 영어 때문에 대화가 뚝뚝 끊어졌다"고도 했다. AfD는 이민자 추방과 권리 박탈, 반유대·반이슬람 노선을 주장하고 나치 시대를 미화하는 등의 행태로 독일 사법 당국으로부터 극단주의 의심 단체로 분류돼 있다. 머스크는 그러나 X를 통해 "독일을 구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은 AfD뿐" "AfD만이 독일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주장해 왔다.

일각에서는 머스크가 유럽에서도 돈으로 선거에 개입하려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머스크는 지난해 미 대선을 앞두고 펜실베이니아 등 경합주에서 '표현의 자유와 총기 소지 권리 지지 청원'에 서명하는 유권자들 중 매일 한 명을 뽑아 100만달러(약 14억원)를 지급하는 이벤트를 했다. 경합주에서 보수 성향 유권자 결집을 유도하려는 전략으로, 매표 행위이자 불법 복권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머스크가 유럽에서 극우 성향 정당들을 지원하고 나서는 이유에 대해 FT는 "그는 서구 문명 전체가 좌파와 '정치적 올바름'에 위협받고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기고자 :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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