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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이룬 '세계 최고'… 지도자로 이루겠다

지난달 말 경기 용인 한 아파트 단지 앞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키 199cm 장신 배구 스타 박철우(39)가 주방 뒷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아내 여자 농구 선수 출신 신혜인(39)씨는 앞치마를 두른 채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이곳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한 뒤 해설가로 변신한 박철우 부부가 최근 문을 연 카페. 박철우는 "아내가 3년 정도 제빵을 배웠다. 은퇴 후 4~5개월 준비해서 카페를 오픈했다"며 "배구 경기 해설을 하지 않는 날엔 카페에서 있으면서 해설 준비도 하고 손님들에게 직접 커피도 내려준다. 해설도 카페도 처음 해보는 거라 사회 초년생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박철우는 한국 프로배구 V리그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스타다. 2005년 프로 원년부터 20년간 활약하면서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 소속으로 7차례 우승을 경험했다. 2023-2024시즌을 끝으로 마지막 소속 팀 한국전력에서 은퇴했고, 지난달 26일 그의 공식 은퇴식이 열렸다. 박철우는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지난 시즌에 들어갈 때 이미 은퇴를 예감하고 서서히 준비를 해왔다"며 "그동안 '이것보다 더 열심히 할 순 없다' 싶을 정도로 배구를 원 없이 했다. 후련하게 잘 끝냈다"고 했다. 남자부 통산 득점 1위(6623점), 공격 득점 1위(5603점), 후위 득점 2위(2013점), 서브 득점 3위(352점) 등 그가 걸어온 길이 한국 남자 프로배구 역사였다.

처음부터 배구 선수를 꿈꿨던 건 아니다.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NBA(미 프로눙구) 스타 마이클 조던을 보면서 농구 선수를 꿈꿨다. 중 1때 이미 키가 188cm. 하지만 농구부 대신 배구부에서 영입 제안이 들어와 뜻하지 않게 배구 선수 길을 걸었다. "배구를 시작할 때부터 세계에서 배구를 제일 잘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했다. 이를 위해 꼼꼼하게 실천 방도를 세워 지켰다. 우선 키는 컸지만 몸무게가 적어 걱정이라 '매일 삶은 달걀 20개 먹기' 같은 식단 계획을 통해 체중을 불렸다. 식습관 조절도 탄력적으로 가져갔다. 며칠 동안은 육식, 며칠 동안 채식… 그런 식으로 최상 컨디션을 유지했다. 매일 자발적인 야간 훈련 계획을 세우고 일주일 혹은 한 달 단위로 수비 연습, 스윙 연습 횟수를 정해 철저히 지켰다.

실력이 급상승하면서 그는 대학을 거쳐 실업·프로 팀으로 향하던 당시 관행과 달리 고교 졸업 후 실업(현대캐피탈)으로 직행했다. 김찬호 현 경희대 감독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문성민·김요한 등과 한국 배구 최고 스타로 위용을 떨쳤지만 시련도 있었다. 2007년 기흉을 세 차례 앓았고, 2009년엔 국가대표팀 코치에게 여러 차례 맞은 일을 폭로하면서 배구계 폭력 추방에 앞장섰다. 박철우는 "(그 사건 때는) 진짜 너무 힘들었다. 좋아하는 배구를 계속하려면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며 "성경 속 솔로몬이 말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반지에 새겼다"고 했다.

V리그 역사에 남을 선수로 이름을 남겼지만 박철우는 "커리어는 100점 만점에 70점"이라고 했다. '세계 최고 선수'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 대회에서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고 했다. 이제 그는 배구 지도자로 남은 아쉬움을 채우려 한다. 일단 해설을 하면서 선수 때와 다른 관점으로 배구를 보는 것도 지도자를 더 잘하기 위한 사전 준비다. "언젠가 국가대표 감독이 돼서 우리나라 최고 선수들을 이끌고 선수 때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고 싶다"며 "단순히 성적을 잘 내는 지도자가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격적으로도 모범이 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최근 한국 배구는 국제 무대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위기라는 지적이 많다. "유소년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아직도 그냥 소리 지르고 욕하면서 가르치는 지도자가 많아요. 그러면 좋은 재목들이 배구계에 남아 있지를 않죠. 배구 행정을 하시는 분들도 다른 이득 따질 게 아니라 오로지 선수들의 발전만을 위한 행정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기고자 : 용인=김영준 기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2007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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