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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 내비게이션 덕분에 운전이 편해졌다. 과거에는 차에 지도를 비치하고 목적지로 가는 길을 메모하거나 머릿속에 그린 뒤에 운전대를 잡았고, 잘 모르는 곳에 갈 일이 생길 때마다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제 그럴 일이 없는 게, '내비'가 척척 길을 안내해주니 말이다.

대신 새로운 스트레스가 생겼다. 갈림길에서 내가 잘 아는 큰길이 아닌 다른 길을 내비가 추천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은 내비를 따라가는데, 이번에 그냥 내가 잘 아는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갑자기 도착 시간이 5분 앞당겨졌다. 왜 내비는 더 시간이 걸리고 좁은 길로 나를 안내하려고 한 것일까? 지금까지 내가 계속 이런 안내를 받았던 것일까? 차가 막혀서 최단 시간을 선택했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적도 있다. 이럴 때마다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로 끝난다면 괜찮을 것이다. 2011년에 네바다주를 여행하던 캐나다 부부가 목적지까지 최단 거리를 선택했는데 지도에도 없는 사막의 황무지로 내비가 인도했다. 아무도 없는 사막에 며칠 갇혀 있다가 남편이 도움을 구하기 위해 사막을 떠돌다 사망했고, 아내가 49일 만에 구조됐다. 이 사건 이후에 'GPS사(死)'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알고리즘 오류로 추정될 뿐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은 비슷한 사망 사고가 잇달았다. 특히 지역 지리를 잘 모르는 관광객이 내비 사고의 단골 희생자였다. 그 외에도 GPS를 응시하거나 조작하다가 나는 사고, GPS 오작동이 낳는 사고도 빈번하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내비 때문에 매년 20만 건의 사고가 발생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인간이 기술을 만들지만, 기술은 다시 인간을 만든다. GPS를 오래 사용한 사람들을 추적 조사해서 2020년에 '과학 리포트'에 출판된 연구는 이들에게서 길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공간 기억 능력이 감소함을 보여주고 있다. 길을 못 찾는 '길치'가 GPS를 쓰는 것이 아니라, GPS의 사용이 사람들을 길치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추석에 내비가 추천한 빠른 길로 갔다가 차량 수백 대가 농로에 갇혀서 고생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오늘부터라도 대략 아는 길은 내비 없이 운전해 보자. 20년 전에는 모두 그렇게 살지 않았던가. 기고자 :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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