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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소설가 열 명이 모여 있는 단톡방, 한 동료가 이번 여름에 많이 먹은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데 생각나는 게 없다며. 먼저 막국수가 올라왔다. 그다음 콩국수, 열무 비빔국수, 오이 냉채, 물회와 삼계탕도 있었다. 특별한 건 없었는데, 저 음식들을 먹으면서 이 더운 여름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막연했던 동료 작가들의 삶이 조금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호박잎이라고 했다. 시인 한 명이 맞장구를 쳤다. 자신도 되직한 된장찌개를 끓여 몇 번 먹었다고. 행사 때 목인사 정도 하는 사이였는데 갑자기 막역하게 느껴졌다.

어쩐 일인지, 평생 먹은 것보다 올해 먹은 호박잎이 훨씬 많은 것 같았다. 먹을 때마다 살짝 묘한 기분이 드는 건 어머니가 먹으라고 할 땐 거의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박도 아니고 호박잎을 무슨 맛으로 먹냐고 밀어내기도 하고 호박잎이 보기 싫어서 가을을 기다렸을 정도였다.

올여름 초입,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까슬까슬한 호박잎을 한 묶음 샀다. 뒷면 껍질을 벗기자 보드라워졌고 찜기에 살짝 찌자 포슬포슬해졌다. 향기도 없고 색이 특별한 것도 아니고, 물기 묻은 걸 손바닥에 펼쳐야 하니 성가시기도 하다. 맛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밥 한 공기를 단숨에 비웠다. 부드럽지도 미끄럽지도 않은데 제대로 씹기도 전에 쑥 몸 안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뭔가 모자란 듯했지만 배는 충분히 불렀다.

며칠 전엔 서울에 있는 딸이 내려와 저녁을 준비하면서 강된장과 호박잎을 쪘다. 딸의 눈이 열무김치, 가지나물을 지나 쌈 접시에 멈추었다. 저건 뭐냐고 물어 호박잎이라고 했는데 인상을 약간 찌푸렸다. 뭘 이런 걸 다 먹냐는 듯. 예상대로 딸은 쌈 접시는 손도 대지 않고 밥을 먹었다. 보다 못해 내가 쌈을 싸서 내밀자 고개를 흔들며 짜증을 냈다. 그 모습도 저 나이의 나하고 닮아 속으로 웃었다. 하긴 예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할 나이다. 그래도 다음 여름에 밥을 먹게 되면 또 호박잎을 찔 것 같다. 외할머니가 좋아하시던 거란 말도 하면서. 기고자 : 정영선 동인문학상 수상 소설가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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