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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국가 선수들 트랙 최강자로

8일(현지 시각) 저녁 프랑스 생드니 스타드 드 프랑스. 2024 파리 올림픽 육상 남자 200m 결승을 앞두고 8만석을 가득 채운 관중이 일제히 환호했다. 이 종목 세계 랭킹 1위이자 100m에 이어 2관왕을 노리는 육상 스타 노아 라일스(27·미국)가 입장했기 때문. 라일스는 트랙 위를 신나게 뛰면서 화답했다. 그러나 환호는 20초를 지속하지 못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온 레칠레 테보고(21)가 19초46으로 아프리카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 라일스가 코로나 감염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긴 했지만 뜻밖 결과에 관중석이 술렁이기도 했다. 라일스는 19초70으로 동메달에 그쳤다.

보츠와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북쪽에 접한 국가로, 면적은 한반도 2.6배지만 인구는 272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올림픽에선 지금껏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가 전부였는데 테보고가 신기원을 이룩했다. 육상 남자 200m에서 나온 아프리카 대륙 최초 금메달이기도 하다. 테보고는 "이제껏 경험하지도 못하고 꿈꾸지도 못한 순간"이라며 "가족, 조국, 대륙 모두에 엄청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10대 때 이미 100m에서 10초 장벽을 깨고 주니어 세계 기록을 세웠던 유망주로 200m에서 현재 세계 랭킹 4위다.

테보고의 나라 보츠와나처럼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스포츠 약소국' 출신 선수들 활약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3일 육상 여자 100m에선 인구 18만명의 카리브해 섬나라 세인트루시아의 쥘리앵 앨프리드(23)가 금메달을 따며 자국에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 앨프리드는 여자 200m에서도 은메달을 따냈다.

8일 육상 남자 창던지기 결승에선 파키스탄의 아르샤드 나딤(27)이 92m97을 던져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나왔던 종전 기록(90m57)을 16년 만에 갈아치웠다. 파키스탄은 이번 대회 전까지 올림픽 금메달이 3개였는데 모두 1990년대 이전 남자 하키에서 나왔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하키 동메달 이후로는 지금까지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하다가 32년 만에 메달이 나왔다.

도미니카 연방 테아 라폰드(30)도 여자 세단뛰기에서 우승하며 자국 사상 첫 메달리스트가 됐다. 도미니카 연방은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섬나라로 도미니카 공화국과는 다른 나라다. 인구는 7만5000명에 불과하다.

육상 외에도 복싱 남자 51㎏급 동메달을 목에 건 다비드 디 피나(28)는 인구 60만명 아프리카 섬나라 카보베르데 출신이다. 카보베르데가 여덟 번째 올림픽 출전 만에 따낸 첫 메달이었다. 역대 올림픽 금메달이 1개뿐이었던 필리핀은 이번 대회에서 2·3번째 금메달을 수확했다. 남자 기계 체조 카를로스 율로(24)가 마루와 도마에서 2관왕에 올랐다.

스포츠 약소국 소속이다 보니 운동 환경이 유복하지 않았다는 점도 비슷하다. 보츠와나 테보고가 육상을 시작한 건 홀어머니와 남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어릴 적 축구와 육상을 병행하다가 육상에 전념했다. 그는 "축구에선 매번 벤치 멤버였다. 가족 생계를 책임질 길은 육상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파키스탄 나딤은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공사장에서 일하며 홀로 돈을 벌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던 나딤이 운동에 재능을 보이자 그를 위해 동네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훈련과 국제 대회 출전 비용을 대줬다고 한다. 카보베르데 디 피나는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자신을 보호하고자 체육관에 다닌 게 복싱 인생 시작이었다. 재능을 발견하고 포르투갈로 유학 갔지만, 돈이 없어서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훈련을 병행했다고 한다.

난민팀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딴 여자 복싱 75㎏급 동메달리스트 신디 은감바(26)도 역경을 이겨낸 인물이다. 카메룬 출신인 그는 11세 때 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갔지만 시민권이 없어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살아야 했다. 그는 동성애자라서 카메룬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카메룬에선 동성애자에게 최고 징역 5년 처벌을 내리기 때문.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도 그는 영국 정상급 복서가 됐지만, 시민권도 여권도 없어서 영국 대표가 될 순 없었고 난민팀으로 올림픽에 나서 메달을 따냈다. 기고자 : 생드니=김영준 기자 김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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