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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태권도 반란 일으킨 김유진

"삼겹살과 된장찌개를 정말 좋아하는데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나요. 꼭 먹어야죠. 시원한 맥주도 함께요."

8일(현지 시각) 여자 태권도 57kg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김유진(24)은 하고 싶은 일을 묻자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183cm 큰 키로 57kg급에서 뛰는 만큼 감량은 매번 고통스럽다. 그는 "파리 올림픽을 위해 식단을 철저하게 관리했지만, 무엇보다 훈련량이 많아 자연스럽게 체중이 조절됐다"고 했다.

어렵게 계체를 통과했지만, 이날 김유진은 매트 위를 날아다니며 상위 랭커를 차례로 제압했다. 본격적 태권도 선수 길로 들어선 이후로 이날이 가장 컨디션이 좋았다고 한다. 김유진은 "경기에 들어가기 전 워밍업을 할 때 몸이 정말 좋아서 오늘 일을 낼 것 같았다"며 "어제 금메달을 딴 박태준(남자 58kg급)이 아침에 훈련 파트너가 되어 줬는데, 태준이가 '누나, 올림픽 별거 아니더라. 긴장 안 해도 돼'라고 해서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우승 후 도복의 태극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세리머니를 한 김유진은 "우리 태극기가 멋있어서 뽐내고 싶었다"고 했다.

여자 57kg급에선 2008년 베이징 대회 임수정 이후 16년 만에 나온 금메달. 도쿄 올림픽에서 '노 골드(은 1 동 2)' 수모를 당한 한국 태권도는 첫날 박태준에 이어 김유진도 정상에 오르며 벌써 금메달 2개를 수확, 종주국 자존심을 회복했다. 역대 최고 성적(2008 베이징 올림픽 금4)을 다시 노려볼 만한 분위기다.

이날 비록 세계 랭킹 24위로 올림픽 무대에 섰지만, 김유진은 자신이 있었다. "매일 지옥길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자신을 혹독하게 밀어붙인 그 시간을 믿었기 때문이다. 보통 훈련을 하면 2시간 동안 1만번 이상 발차기를 하는데 하루에 세 차례, 3만번 이상 찬 날도 많았다고 한다.

세계 1위 중국 뤄쭝스와 벌인 4강전이 가장 큰 고비였다. 1라운드를 7-0으로 쉽게 따낸 그는 2라운드를 1-7로 힘없이 내주며 역전패 위기에 몰렸다. 그때 그동안 훈련해 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힘든 훈련을 이겨냈는데 여기서 무너진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발을 차고, 또 찼어요." 김유진은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으며 뤄쭝스를 10-3으로 눌러 결승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김유진은 사실 파리로 오는 길이 더 험난했다. 오랜 시간 무릎 부상에 시달리며 올림픽 출전을 위한 랭킹 포인트를 채우지 못한 그는 국내 선발전을 치러야 했다. 한국 여자 엘리트 선수들이 잔뜩 몰려 있는 체급이라 치열한 경쟁을 거쳐 1위를 한 김유진은 지난 3월 중국에서 열린 대륙 선발전에서 2위 안에 들어 가까스로 파리행 티켓을 따냈다.

김유진은 "태권도 레전드인 이대훈 코치님에게 '올림픽 부담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이 코치님이 '국내 선발전과 대륙 선발전이라는 큰 부담을 두 번 이겨냈으니 올림픽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한 그 말이 큰 도움이 됐다"며 "부담도 됐지만 하면 할수록 태권도가 느는 게 느껴져 올림픽이 다가오는 게 설레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 자신감이 금메달을 불렀다.

김유진은 별명이 '빨대'다. 키가 크고 말랐기 때문. 57kg급의 183cm는 장신 선수가 많은 국제 무대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신장(身長)이다.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 긴 다리로 얼굴을 찍어 누르는 공격으로 상대를 연달아 제압했다. 거리를 두고 펼치는 공격도 일품이지만, 뤄쭝스와 벌인 4강전 접근전에서 다리를 높이 쭉 올려 얼굴을 가격하는 기술도 선보였다. 올림픽을 앞두고 체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유산소 훈련에 매진한 효과를 봤다. 김유진은 "상대가 늘 먼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 경기를 편안하게 끌고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유진은 여덟 살 때 할머니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며 도장에 데리고 가 태권도와 처음 만났다. 금메달을 따고 지금 가장 떠오르는 사람을 묻자 곧바로 "할머니"라고 대답한 김유진은 "할머니! 나 드디어 금메달 땄어! 태권도 시켜줘서 너무 고마워!"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그래픽] 파리투데이 기고자 : 파리=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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