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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金 13개 최다 타이

세계 24위의 '도장 깨기'였다.

김유진(24·울산광역시체육회)이 파리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 금메달을 땄다. 9일 결승에서 세계 2위이자 작년 세계선수권 챔피언인 이란의 나히드 키야니찬데를 2대0(5-1 9-0)으로 제압했다.

입상 후보로 꼽히기는커녕, 올림픽 랭킹이 낮아 대륙별 선발전을 거치면서 어렵게 파리행 티켓을 따냈던 김유진이었다. 하지만 첫 올림픽 무대에서 놀라운 승리 행진을 했다.

김유진은 16강전에서 세계 5위 하티제 일귄(튀르키예), 8강전에서는 4위인 스카일러 박(캐나다)을 각각 2대0으로 완파했다. 4강전에선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세계 1위 뤄쭝스(중국)까지 2대1로 물리치는 파란을 일으켰다.

결승전에서도 김유진의 뛰어난 발차기 공격이 돋보였다. 특히 2라운드에선 머리 공격을 연거푸 성공하며 한 점도 주지 않고 9점을 뽑는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

김유진은 경기 후 "세계 랭킹은 숫자에 불과하다.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면서 "준비를 힘들게 해서 자신감이 있었고, 즐기자는 마인드로 뛰었다"고 말했다. 김유진은 '금메달이 반전이라고들 한다'는 취재진의 말에 "반전 아니죠"라고 강조했다. 파리 올림픽에선 김유진처럼 세계 랭킹이 낮은데도 메달을 따내며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사격에선 세계 35위였던 오예진이 여자 10m 공기권총 금메달을 땄고, 세계 16위였던 반효진은 여자 10m 공기소총 정상에 올랐다. 남자 25m 속사권총에서 한국에 사상 첫 메달을 안긴 조영재는 올림픽 전까지 세계 랭킹이 37위에 불과할 정도로 주목받지 못하던 선수였다.

이들의 '깜짝 활약'에 힘입어 한국은 역대 최다 금메달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 13·은 11·동 8,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금 13·은 9·동 9개를 수확했던 한국은 파리에서 9일 현재 금 13·은 8·동 7개를 획득했다.

◇세계 랭킹에 주눅 들지 않은 숨은 고수들

'코리안 언더도그'들에겐 큰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도 묵묵히 노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코치진의 피땀 어린 노력이 어우러져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었다.

세계 랭킹이 낮다고 해서 무조건 선수의 기량이 모자란다고 말할 수는 없다. 랭킹은 국제 대회에 자주 나가 포인트를 많이 쌓으면 올라가고, 대회 출전 횟수가 적으면 내려간다.

김유진이 세계 랭킹 20위권에 머문 이유도 부상 영향이 컸다. 한체대 1학년 시절 나폴리 유니버시아드 1위를 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던 김유진은 2022년 무릎을 심하게 다쳐 1년 넘게 재활에만 매달려야 했다. 한창 랭킹 포인트를 쌓아야 할 시기를 놓쳤다. 손효봉 대표팀 코치는 "김유진은 뤄쭝스와 상대 전적에서 2승 1패로 앞섰고, 다른 상위 랭커들과도 대등한 경기를 해 왔다"고 말했다.

김유진은 부상에서 회복하고 나서 국내 선발전과 대륙 선발전을 통과하며 파리행 출전권을 따냈다. 태권도계 관계자는 "국제 대회에 많이 나가면 랭킹은 높아져도 라이벌에게 전력이 드러나는 부담이 있다"며 "김유진의 경우엔 오히려 상대적으로 견제를 덜 받고 있었다. 장점인 큰 키를 살리는 머리 공격을 집중적으로 훈련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오예진과 반효진 등 10대 신예들이 이변을 일으킨 사격은 총점을 따지는 본선 방식이 아닌 낮은 점수부터 탈락시키는 결선 방식으로 대표를 뽑은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달이 결정되는 결선 방식에 강한 모습을 보인 어린 '강심장'들이 올림픽 무대에 서면서 큰일을 해냈다는 것이다. 사격계 관계자는 "대표팀 선발 방식을 바꾸자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엇갈렸다"면서 "하지만 이렇게 성과가 나왔으니 앞으로는 새 선발 방식에 이견이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여고생 금메달리스트가 됐던 여갑순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 감독은 "사격은 0.1점으로 순위가 바뀌기 때문에 큰 무대를 즐기고 집중력이 좋은 어린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선전할 가능성이 크다"며 "세계 랭킹이 높은 선수들은 오히려 더 잘하려는 마음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 과학-현지 훈련 캠프 조성도 한몫

'언더도그'의 성공을 말할 때 스포츠 과학의 지원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연구원들은 각 종목이 바라는 훈련 시스템을 마련하고, 대표 선수들의 장단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몇몇 연구원들은 외국 경쟁자들의 전력을 분석하는 역할까지 맡았다.

스포츠정책과학원은 올림픽을 앞두고 극심한 압박감에 시달리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매달 100여 건의 심리 상담도 진행했다. 선수들의 뇌 혈류량을 분석해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뇌 과학도 동원했다. 과학원 측은 "선수들이 과거에는 심리 상담에 거부감이 컸지만 최근에는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많다"고 밝혔다.

대한체육회도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을 위한 맞춤 심리 상담을 의뢰했다. 한덕현(스포츠 정신의학 전공) 중앙대 의대 교수는 "상담을 통해 선수와 코치진 간 의사소통이 개선된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 스포츠계 인사는 "주요 단체 구기 종목이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못 따는 바람에 대회 전에 국민적인 관심과 기대가 예년보다 낮았다"면서 "참가 선수도 적어 올림픽 메달 목표를 낮춰 잡았는데, 도리어 선수들에겐 부담감을 덜어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는 33억원을 들여 파리 인근 퐁텐블로시에 훈련 캠프 겸 지원 센터인 '팀 코리아 파리 플랫폼'을 조성했다. 펜싱 등 13종목 146명의 선수와 지도자가 현대식 훈련 시설을 갖춘 이곳에서 현지 적응 훈련을 한 뒤 올림픽 선수촌에 들어갔다. 급식지원 센터는 1만끼 이상의 식사를 제공하고, 한식 도시락을 3000개 이상 만들어 선수들이 입맛을 잃지 않도록 힘썼다.

[그래픽] 한국 역대 올림픽 메달 종합 순위

[그래픽] 파리 올림픽 메달 중간 순위 9일 오후 10시(한국 시각) 기준

[그래픽]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코리안 언더도그' 기고자 : 파리=장민석 기자 김민기 기자 한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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