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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이 강한 명사수 양지인 金

한국 사격이 파리 올림픽에서 세 번째 금메달을 따내며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던 2012 런던 올림픽(금3·은2) 때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사격 3호 금메달' 주인공은 양지인(21·한국체대). 그는 3일(현지 시각) 프랑스 샤토루 슈팅 센터에서 열린 여자 25m 권총 결선에서 총점 37점을 쏜 후, 프랑스 카밀 예드제예스키와 슛오프 접전 끝에 금메달을 차지했다. 런던 대회 김장미에 이어 이 종목에서 12년 만에 나온 금메달이다.

여자 10m 공기권총 오예진(19·IBK기업은행), 여자 10m 공기소총 반효진(17·대구체고)에 이은 이번 대회 사격 3번째 금빛 쾌거. 혼성 10m 공기소총 박하준(24·KT)·금지현(24·경기도청)과 여자 10m 공기권총 김예지(32·임실군청) 은메달까지 더해 한국 사격은 이번 대회 금메달 3개와 은메달 2개를 적중시켰다.

양지인은 본선은 6위(586점)로 결선에 올랐다. 이 종목 결선에선 한 시리즈에 표적이 3초간 나타났다가 7초 사라지기를 5번 반복하는데, 1발당 10.2점 이상을 맞히면 1점, 그러지 못하면 0점이 주어지는 방식이다. 세 시리즈를 한 후, 그다음부터는 매 시리즈 종료 후 점수가 가장 낮은 선수가 탈락한다. 양지인은 첫 시리즈 3점으로 4위에서 시작했으나, 2·3시리즈에서 연달아 만발(만점)을 쏘면서 선두로 올라섰다. 이후 내내 선두를 유지하다가 9시리즈에서 예드제예스키에게 동점을 허용했고, 결국 둘만 남은 마지막 10시리즈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한 시리즈(5발)로 승부를 가리는 슛오프에서 양지인이 4점을 쏜 반면, 예드제예스키는 1점에 그쳤다.

양지인은 이 종목 세계 랭킹 2위. 지난 1월 아시아선수권 때 결선 세계기록(40점)을 세운 후 5월 바쿠 월드컵 1차 경기에서 그 기록과 타이를 이루며 우승했다. 하지만 대표팀 동료 김예지가 같은 대회 2차 경기에서 세계신기록(41점)을 갈아치워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파리 올림픽에서도 김예지가 10m 공기권총 은메달을 따고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며 25m 권총에서도 김예지에게 주목이 쏠렸다. 하지만 사격계 내부에선 올림픽 전부터 양지인을 이 종목 금메달 후보로 평가하고 있었다. 사격 대표팀이 파리 올림픽 목표로 금1·은2·동3을 내세웠는데, 금메달 1개를 양지인이 딸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양지인은 매사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 스스로를 '대충주의자'로 부른다. 사격 선수 누구나 가지고 있는 독특한 루틴도 그에겐 특별히 없다. 뚜렷한 꿈과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인생 좌우명은 "어떻게든 되겠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본인 장단점 모두 "대충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성격이 그가 총을 잘 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총을 들고 조준하고 격발할 때까지 행위가 간결할수록 좋은데, 양지인은 이 과정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총구가 흔들리는 정도가 작고 자세가 안정적이라서 기복 없이 꾸준히 높은 점수를 쏜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만큼은 긴장감이 남달랐다. 그는 "사격장이 파리와 멀어서 분위기가 덜 날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 떨려서 속이 안 좋았다"며 "이게 올림픽이구나 싶었다. 아시안게임보다 2배로 떨렸다"고 했다. 그는 긴장하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머릿속 생각을 글로 적는 버릇이 있다. '뭘 적어야 하지' '떨린다' '잘할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그대로 종이에 쓰면서 마음을 정리한다고 한다. 그는 "어제 자기 전에, 오늘 시합 전에도 적었다. '못하면 어떡하지'라고 썼다"고 했다.

전북 남원 출신인 양지인은 중학교를 졸업하며 서울로 사격 유학을 떠났다. 중1 때 수행평가로 시작한 사격에 재능을 보여 2학년 때 전국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한국체대에서 교생 실습을 나와있던 사격 선배가 "더 큰 선수가 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고 권유해 2019년 서울체고에 진학했다. 그때부터 25m 권총을 주 종목 삼았다. 고2 때부턴 코로나 사태로 많은 대회에 나서지 못했으나, 그 와중에 온라인 대회 등 출전 대회에서 모두 입상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지만, 대회가 1년 미뤄지며 재차 선발전 기회를 받아 대표팀에 승선했다. 개인전·단체전 동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와 대회 순연 최대 수혜자로 꼽혔다.

아버지 양재성(53)씨는 "나도 권투 선수 출신이라 운동이 힘들 걸 알아서 사격을 시키지 않으려 했는데 지인이가 '아빠, 저 믿어주세요'라고 하더라. 서울 유학도 본인이 먼저 원했다"며 "파리에 가기 전에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 오면 받으라고 하더라. 기자들이 전화할 거라고 자신감을 보였다"고 전했다. 양씨는 "딸이 금메달을 따서 눈물이 나온다. 축하 플래카드를 거창하게 달아주고 싶다"고 했다. 기고자 : 샤토루=김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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