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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거는 기대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발행일 : 2024.06.07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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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대남 쓰레기 송출에 분노한 우리 정부가 '북한이 감내하기 어려운 조치'에 착수할 것이라 경고하더니, 곧이어 9·19 남북군사합의의 전면적 효력 정지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준비가 발표되었다. 지난 수년간 북한이 남북 합의와 국제법을 무시하고 시도 때도 없이 한국과 국제사회에 대해 미사일 도발과 무력 위협을 벌여 온 점을 생각하면 시기적으로 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정부의 대북 대응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건 다행이다. 다만, 정부의 향후 조치가 과연 '북한이 감내하기 어려운 조치'에 도달할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국가 간 협상에 참여하는 모든 나라는 상대방의 양보를 압박하고 얻어내기 위해 다양한 협상 카드를 동원한다. 일반적으로는 양측 협상 카드를 교환하는 주고받기식 협상을 갖기 마련이지만, 점잖은 외교적 협상보다는 위협 수단을 동원해 일방적 양보를 강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중국과 북한은 평화적 협상보다는 주로 후자의 위협적 방식에 많이 의존한다. 그들이 그런 방식을 선호하는 것은 공산주의 체제상의 이유도 있지만, 그런 방식으로 협상에 성공한 경험의 축적 때문일 것이다. 한·중 간의 통상 협상, 사드 제재와 탈북자 북송을 둘러싼 협상, 북한과의 군사 협상, 비핵화 협상 등이 대표적 사례다.

    스탈린 시대의 구소련에 전수받은 북한의 협상술은 '벼랑 끝 전술'이라 불리는 험악한 협상 행태로 자신의 보잘것없는 협상 카드를 극대화하면서 새로운 협상 카드를 끝없이 생성해 내는 능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북한이 협상 상대방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서 책상을 두드리고 고함을 질러가며 양보를 강요하면, 협상 상대방은 당장 회담이 파탄되고 전쟁이라도 터질 듯한 공포감에 휩싸여 북한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는 불리한 합의문에 동의하곤 한다. 이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에서 채택된 여러 합의문을 읽다 보면 마치 북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 적어 온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러한 북한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대북 협상을 위한 가장 중요하고도 강력한 협상 카드를 번번이 스스로 폐기하는 실책을 반복해 왔다. 먼저 큰 양보를 하면 북한도 이에 호응하리라는 순진한 '선순환의 환상' 때문이었다. 대표적 사례는 김영삼 정부 당시의 팀스피릿 훈련 폐지였다. 북핵 문제가 막 부상하던 1990년대 초 매년 실시되던 팀스피릿 한미 연합 훈련은 한국 정부가 보유한 가장 무서운 대북 협상 카드였다. 그에 대한 대응이 힘겨웠던 북한은 이를 어떻게든 취소시키려 읍소도 양보도 하고 남북 회담에 응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는 구실로 팀스피릿 훈련의 영구 중단을 결정했고, 그 후 북한은 김영삼 정부와의 회담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팀스피릿 훈련 폐지 이래 한국이 보유하게 된 가장 강력한 대북 협상 카드는 휴전선에서의 확성기 방송이다. 도달 거리가 10여㎞에 불과해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대북 유화론자들의 주장에도 불구, 확성기 방송이 휴전선 지역에 밀집된 북한군의 기강과 충성심에 미칠 심대한 잠재적 영향은 김정은 정권에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채택된 4·27 남북 판문점 선언이 북핵 문제를 비롯한 다른 사항들은 원론적, 추상적으로 규정하면서 유독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금지만 구체적으로 규정한 걸 보면, 당시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응했던 근본 목적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에게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의 핵무기에 못지않은 파괴력을 가진 고도의 전략 무기다. 냉전 시대에 소련이 멸망했던 것도, 동독이 몰락하고 독일이 통일된 것도 서방 진영의 방송 유입과 인권 개선 압박에 따른 체제 와해가 최대 요인이었다. 우리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대북한 무기이자 협상 카드인 확성기 방송을 현 정부 출범 2년이 넘은 이제야 '재개 준비'에 착수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만일 우리가 일찌감치 확성기 방송 재개 태세를 갖추었더라면 북한이 지금처럼 제멋대로 미사일 발사와 대남 위협을 장기간 계속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제라도 북한이 미사일 도발과 대남 위협을 할 때마다 그 강도와 빈도에 맞추어 자동적으로 확성기 방송을 실시하는 응징 체제를 구축한다면, 북한은 도발에 앞서 깊이 숙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고자 :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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