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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피의자에게 거짓말할 권리를 줘야 하나

    최원규 논설위원

    발행일 : 2024.06.05 / 여론/독자 A3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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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김호중씨의 음주 뺑소니 사건을 보면서 피의자나 참고인에게 거짓말할 권리를 언제까지 줘야 하느냐는 의문이 새삼 떠올랐다. 우리 법은 법정에서 증인이 하는 거짓말은 위증죄로 처벌하지만, 수사기관에서 하는 거짓말에 대해선 처벌 규정이 없다. 대부분 방어권 차원에서 용인한다. 피의자든 참고인이든 마찬가지다. 이젠 웬만한 사람들도 이를 다 안다. 그래서 김씨와 소속사도 사고 발생 열흘 동안 대놓고 음주 사실을 부인했을 것이다.

    그 거짓을 덮으려고 김씨와 소속사 측은 운전자 바꿔치기, 말 맞추기, 조직적 증거인멸을 했다. 거짓이 더 큰 거짓을 낳고 범죄로까지 이어졌다. 소속사 대표와 직원은 이 일로 구속됐고, 김씨도 위험운전치상·도주치상 등의 혐의로만 구속됐다. 사법 시스템 농락의 시초는 거짓말이었는데 그것으론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미국은 다르다. 허위 진술죄 규정이 있어 수사기관에서 한 거짓말도 처벌할 수 있다. 미국 연방 대법원도 1998년 피의자에게 거짓말할 권리가 없음을 명백히 밝혔다. "회사에서 현금이나 선물을 받았느냐"는 연방 조사관 질문에 노조 간부가 "아니오"라고 답한 것이 허위 진술죄에 해당한다고 했다. 소극적 범행 부인도 허위 진술죄라고 본 것이다.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진술 거부권은 불리한 진술을 거부하고 침묵할 권리를 준 것일 뿐 일단 입을 열면 진실을 말하라는 것이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진술 거부권의 취지도 미국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 허위 진술을 처벌할 규정이 없다 보니 이젠 너 나 할 것 없이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이 판치면 힘 있고, 돈 있고, 교활한 범죄자가 법망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지고, 범죄 피해자는 구제받기 더 어려워진다. 이것은 정의롭지 못한 것 아닌가.

    처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간접적이긴 해도 형법상 '위계에 의한 공무 집행 방해'로 처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유죄로 인정되는 경우가 드물다. 대개의 경우 법원이 수사로 밝혀낼 수 있을 정도의 허위 진술은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위 진술이 통해도 이는 수사기관이 충분히 수사하지 못한 결과일 뿐 수사기관을 속인 행위만으로 죄를 묻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위 진술을 하게 되면 수사기관 입장에선 불필요한 증거 조사나 관련자 소환을 해야 할 수 있고, 자칫하면 무고한 사람이 처벌될 수도 있다. 때로 수사·재판 지연도 초래한다. 그것은 국가의 사법 기능을 방해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법원이 허위 진술에 너무 관대해 거의 처벌이 어렵다.

    형사 사법의 중요한 가치는 적법 절차에 의한 피의자 인권 보장과 실체적 진실 발견이다.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미국은 피의자 인권은 보장하되 사건 실체를 밝히는 데 필요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고 있다. 허위 진술죄도 그중 하나다. 그런 균형이 필요한데 우리는 그동안 피의자 인권에만 치중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우리도 이젠 허위 진술죄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본다. 자백을 강제하자는 게 아니다. 피의자 입장에선 불리하면 진술을 거부하면 된다. 적어도 적극적인 거짓말은 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진술 거부와 허위 진술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검찰이 이를 무기로 기소권을 남용할 우려가 있다면 그것을 막을 장치를 두면 된다. 적용 대상을 뇌물 등 권력형 범죄, 살인·마약·테러 등 중대 범죄로 제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위 진술죄는 그간 학계에서도 많이 논의했던 내용이다. 이젠 논의를 본격화했으면 한다. 교활한 범죄자들이 법망을 빠져나가려고 거짓말을 방어 수단으로 악용하는 상황을 언제까지 지켜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기고자 : 최원규 논설위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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