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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얼마나 통제했으면, 젊은이들 천안문 사태 모른다"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발행일 : 2024.06.05 / 국제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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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주기 맞은 중국 천안문 사태
    美 청문회 선 시위 주역 저우펑쒀

    "1989년 6월 천안문 광장에서 누구보다 먼저 시위를 벌였습니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탱크가 밀려 들어올 때 마지막으로 자리를 떠난 사람도 저였습니다. 그때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중국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중국의 천안문 사태 35주기를 맞은 6월 4일 오전, 미국 연방하원 의원회관인 워싱턴DC 레이번 빌딩에서 천안문 시위 주역 중 한 명인 저우펑쒀(周鋒鎖·56·사진)씨가 굳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미 의회의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는 이날 저우펑쒀 등 중국 공산당의 인권 유린에 반대하는 중국 출신 인사들을 초청해 청문회를 열었다.

    중국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기 위해 상·하원의 민주·공화 양당이 2000년 초당적으로 출범시킨 CECC는 미 행정부의 대중(對中)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중의 갈등이 경제·안보 등 전방위로 번지는 가운데 인권을 내세워 중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천안문 사태는 중국 내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 시위 탄압에 반대했던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가 1989년 4월 사망한 뒤 추모 집회가 확산하면서 촉발됐다. 1989년 6월 4일 중국 정부는 베이징 천안문 광장 일대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학생과 시민들을 군을 동원해 진압했고 이 과정에 대규모의 희생자가 나왔다.

    당시 베이징 칭화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던 저우씨는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공산당의 집중 추적을 받았다고 이날 밝혔다. 그는 공산당의 수배 대상 상위 5위에 들었고 결국 미국으로 망명했다. 현재 미국의 인권 단체 '차이나 휴먼라이츠'의 상임이사인 저우씨는 이날 "중국 공산당은 내부 검열과 잔인한 탄압을 통해 학살의 기억을 지우는 방법을 선택했다"며 "언론 자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일어난 일의 실체에 대한 언급을 금지해 오늘날 중국의 많은 젊은이는 (당시 상황을) 들어본 적도 없을 정도"라고 했다.

    저우씨는 "(미국 망명 이후인) 2022년 약 50명의 젊은이와 함께 중국 공산당을 규탄하는 팻말을 들고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핼러윈 퍼레이드에 참가했다"며 "나는 군중 속에서 유일한 나이든 사람이었는데 훗날 대규모 '백지(白紙) 시위'를 조직한 학생들을 봤다"고 했다. 백지 시위는 2022년 11월 중국 당국의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에 대한 반발로 상하이에서 시작해 전국적 반(反)정부 시위로 확대됐다. 그는 "참가한 젊은이들 일부는 (35년 전) 천안문 시위대의 자녀들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1989년 천안문 광장에서 내가 들었던 자유의 횃불을 드디어 젊은 세대가 이어받았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에 일부 참석자는 눈물을 흘렸다.

    이날 청문회엔 실제 백지 시위를 벌였던 중국 출신 컬럼비아대 학생도 참석했다. 커린(Karin)이라는 가명을 쓰는 그는 중국에 있는 부모님이 당국의 보복을 당할 수 있어 청문회엔 얼굴을 가린 채 나타났다. 커린은 "(중국 당국의 감시를 무릅쓰고) 공개 증언을 하는 게 부담스럽지만 이미 공산당 요원으로부터 협박, 괴롭힘, 심지어 신체적 폭행까지 경험한 동료 학생 활동가들의 고통이 열 배는 클 것"이라며 "공안 당국이 우리 부모님을 찾아가는 일이 있더라도 이곳에서 증언할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이어 "(해외에서 유학하는) 중국인 학생에 대한 당국의 탄압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미국의 지원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했다.

    청문회를 진행한 CECC 공동 의장 크리스 스미스 하원 의원(공화당)은 "중국 공산당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인권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반인도적 범죄를 자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미국과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천안문에서 인민해방군 탱크를 막아섰던 '탱크맨'의 편에 서거나 혹은 탱크(중국 인민해방군)의 편에 서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중간은 없다"고 했다. 천안문 사태 다음 날인 1989년 6월 5일 중국 인민해방군이 탱크를 몰고 천안문 광장에 들어섰을 때 한 남성이 맨몸으로 가로막았던 일을 언급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탱크맨'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지만 외신 기자들이 이 장면을 촬영했고,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탱크맨은 지금도 공산당의 탄압에 맞선 저항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기고자 :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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