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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가난에 멍든 르완다 살리기 위해… '박정희의 길' 따라갔다

    박정훈 기자 김보경 기자

    발행일 : 2024.06.05 / 종합 A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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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완다 카가메 대통령 인터뷰

    "대한민국이 발전해온 역사, 사회와 국가를 재건해온 과정은 르완다에 많은 교훈을 줍니다. 특히 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며 산업 성장을 이끈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4일 개막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참석한 폴 카가메(67) 르완다 대통령은 이날 서울 강남구 한 호텔에서 본지와 만나 "한국이 폐허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가 된 것만큼, 그 성과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고 말했다. 그의 방한은 이번이 네 번째다. 아프리카의 대표적 친한파 지도자로 꼽히는 그는 2000년(과도정부 기준, 정식 대통령 취임은 2003년) 집권 이래 발전의 모범적 모델로 줄곧 한국을 언급했고, 존경하는 지도자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아왔다.

    경상남·북도를 합친 면적보다 조금 작은 국토에 1400만명이 모여 사는 동아프리카 나라 르완다는 석 달 동안 100만명이 목숨을 잃은 제노사이드(인종 대학살)의 아픔을 딛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탄탄히 성장하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제노사이드 30년을 맞은 올해 카가메의 리더십도 조명받고 있다. '르완다의 박정희'라고도 불려온 그는 5일 연세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는다.

    ―본받고 싶은 국가 지도자로 박정희를 꼽는 이유는.(르완다는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실천한 나라 중 하나다.)

    "영감을 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신속한 국가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또 한국을 경제 강국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에 비전 있는 접근 방식과 결단력을 보여줬다. 특히 교육 개혁, 산업화, 기반 시설 개발 등이 나에겐 인상적이었다. 이 분야들에 집중함으로써 빠른 국가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국·르완다의 발전 과정에 유사점은.

    "한국이 어디서 왔는지, 그 과거를 알지 못하고 한국의 지금을 말하긴 어렵다. 르완다도 대학살이라는 우리만의 슬픈 역사가 있다. 그런 일이 있다 보니 수년간 발전이 지연됐다. 이 분열된 나라에 전환이 필요했다. 나는 르완다가 발전하기 전에 (한국처럼) 안보와 사회 안정을 먼저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도 과거의 아픈 역사와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계속 뒤돌아본다."

    ―당신이 꿈꾸는 미래의 르완다는 어떤 모습인가.

    "아주 간단하고 명백하다. '한국처럼 되는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발전했는지, 르완다에도 시간이 주어졌는데 왜 아직은 (한국처럼) 되지 못했는지…. 이것이 르완다 사회에 던져진 질문이다. 나의 과제는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르완다의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제노사이드는 1994년 4월부터 석 달 동안 다수 후투족(族)이 소수 투치족과 이들을 돕는 온건 후투족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다. 투치 출신인 카가메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피해 부족(투치)은 명확히 언급하면서도 가해 부족(후투)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다. 그는 정권을 잡은 후에도 후투에 대한 보복을 자제했다. 지난 4월 제노사이드 30주년 기념식을 관통하는 주제도 '단합'이었다.

    ―르완다는 제노사이드의 역사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

    "우리는 그간 걸었던 화해와 단합, 재건을 위한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제노사이드 30주년을 보냈다. 정의를 실현하고, 아픔을 치유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사명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역사적 불의를 해결하고 모든 르완다인이 번영할 수 있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많은 나라가 복수의 악순환에 빠진다. 르완다가 단합을 대신 선택한 이유는.

    "당신은 '쉬운 복수'를 거론하고 있다. 우리는 훨씬 더 어렵지만 좋은 복수를 했다. 바로 포용이다. 당신이 말하는 방식으로 보복한다면 사회 자체가 망가지고 소멸을 향해 갈 것이다.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안을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르완다는 최근 영국으로 향하는 아프리카의 난민을 대신 수용하기로 합의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올랐다. 영국이 르완다에 돈을 지급하고 난민을 강제로 보내는 방식에 대해 인권침해라는 비난도 나온다.

    ―난민 인권침해 논란에 대한 입장은.

    "이 난민들은 갈 곳이 없다. 이들이 머물 곳을 합법적으로 마련해준 행위가 왜 인권침해인지 이해할 수 없다. 과거에도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가려다 고통을 받은 리비아 난민을 르완다가 받아준 적이 있다. 모두 국제적 합의에 따른 것이다."

    2003년 7년 임기의 정식 대통령으로 임기를 시작한 그는 두 번째 임기 중이던 2015년 3연임 제한 규정을 철폐하는 내용으로 헌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2034년까지 대통령직 수행이 가능해졌다. '독재 굳히기'라는 국제사회의 비판도 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미소를 지으며 질문에 답했지만 장기 집권에 관한 질문엔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독재자라는 비난도 있는데.

    "거기에 대해 내가 무엇이라 말할 수 있겠나. 르완다의 미래는 르완다인들이 선택하는 것이 맞다.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틀로 르완다를 읽어낸다. 우리는 발전과 미래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선택하는 과정에 있다. 르완다인들은 안정을 원한다. 르완다의 투표율은 90%에 달하며, 그들이 안정적인 리더십을 잃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카가메 대통령은 누구

    르완다의 소수 부족 투치족 출신으로 1957년 르완다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우간다에서 난민으로 보내고 우간다 고위 군사 정보 장교 등으로 활동하다 1990년 귀향했다. 1994년 4월 후투족 출신 주브날 하비야리마나 대통령의 비행기 추락사로 후투족이 투치족 및 투치에 우호적인 후투족을 상대로 집단 학살에 나서자 르완다애국전선을 이끌고 석 달 만에 내전을 진압했다. 이후 과도정부에서 부통령 겸 국방장관으로 민심 수습에 나서며 실질적 지도자로 급부상했고 2000년 과도 대통령을 거쳐 2003년 정식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후 2010·2017년 대선에서도 압승하며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다.

    [그래픽] 르완다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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