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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사라졌다고 한다. 무슨 일인가 하고 기사를 봤더니, 5월 중순까지 태풍이 하나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5월 중순까지는 보통 태풍이 2~3개 생겨나는데 이번에는 아직 1호가 없다는 것. 1951년 이후 74년 동안 올해를 포함해 7번일 정도로 드문 경우라고 한다. 기상청에선 이런 해면 여름에 큰 물난리가 나곤 했단다.

우리만 이런 게 아니었다. 섭씨 45도 폭염을 기록한 멕시코 푸에블라에선 더위 때문에 원숭이들이 나무에서 툭툭 떨어지며 집단 폐사하고 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마지막까지 나뭇가지를 잡고 있던 손아귀에서 힘을 놓아 버렸을까…. 이런 '기현상'을 들을 때마다 심장 한쪽이 덜컥 내려앉는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움직임 앞에서 인간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2년 전 폭우 때도 그랬다. 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였고, 곳곳에서 물난리가 났다. 물이 가득 들어찬 지하 주차장과 반지하 방에 갇혀 가슴 아픈 사고를 당한 이들도 있었고, 이웃들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구조된 이들도 있었다.

그때였다. 서울 강남에선 승용차들과 버스까지 물에 잠긴 가운데, 침수된 차 위에 올라가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태연하게 휴대폰을 하는 한 남성의 모습이 화제가 됐다. 당시 그는 '폭우 속 현자'라 불렸다. 혼란한 상황과 대비되는 남성의 여유로운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기후변화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무력감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현자'의 모습은 지금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법으로 애쓰고 있다. 쓰레기를 주우며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텀블러나 개인 포장 그릇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물론, 그런다고 당장 남극의 빙하가 다시 얼어붙고 수온이 낮아지진 않는다. 그럼에도 세상은 노력하는 사람들이 바꿔왔다. 그렇기에 더욱 꾸준해야 한다. 이 지구에 오래도록 붙어 있기 위해 진짜 현자가 되는 법을 익혀야겠다. 기고자 : 권희진 2024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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