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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의 밤은 부드러워, 마셔] 블러디 메리

    한은형 소설가

    발행일 : 2024.05.18 / 통판 B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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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술이 아닌 육각형 음식이다

    미국 뉴올리언스에 다녀온 분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도시에서는 개와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러 간다는 이야기였다. 술 마시는 사람 옆에 소만 한 개가 엎드려 있다고. 실내에 개를 데리고 들어오는 건 아니고 야외 테이블에서 그랬다고. 그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 그 광경이 꽤 이색적이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술집 앞에서 개가 사람을 기다리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떠올렸다. 짐 자무시의 '패터슨'. 나는 애덤 드라이버만이 아니라 그의 개로 나오는 잉글리시 불도그도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개의 화면 장악력이 상당해서다. 비중도 그렇고 존재감도 그렇다. 애덤 드라이버와 일상을 함께하고, 술집까지 같이 가는 개다. 하지만 술집에는 함께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린다.

    뉴올리언스와 개와 술에 대해 생각하다가 뉴올리언스 하면 블러디 메리지 싶었다. '패터슨'을 생각하면 개부터 떠오르듯이 뉴올리언스 하면 블러디 메리가 떠오른다. 칵테일 사제락(Sazerac)의 발상지라고 알고 있긴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뉴올리언스는 블러디 메리'라고 박혀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블러디 메리들이 온종일 각축을 벌이는 곳이라고 해야 하나. 뉴올리언스에서는 아침부터 블러디 메리를 먹는데, 또 아침에만 먹는 게 아니라서 '온종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화려함이란 무엇인가. 온갖 과시적인 토핑을 덕지덕지 올렸다는 의미에서의 화려함이다. 토마토 주스 위의 군비경쟁이라는 위험한 비유를 드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 나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뉴올리언스와 블러디 메리를 함께 구글에 검색하면 대체 이게 뭘까 싶은 것들을 보실 수 있다. 기괴할 수도, 흥미로울 수도 있다. 뚱카롱이나 온갖 변종 약과들은 약과라고 느껴지실 정도다.

    처음에는 기괴하다고 생각했다. 블러디 메리에 셀러리와 함께 꽂힌 베이컨을 보고서였다. 셀러리도 매끈한 줄기가 아니라 이파리가 덥수룩한 부위라 초록색으로 변한 설인(雪人) 예티 같았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새우, 가재, 굴 튀김이나 오크라, 아스파라거스, 오이, 할라피뇨, 올리브 피클을 꽂은 것도 있다. 새우튀김으로 하트를 만들거나 베이컨에 주름을 잡아 프릴을 만들기도 했다. 대체 왜? 먹는 거에 왜? 이런 의문이 들었다. 맞다. 식욕이 감퇴되는 비주얼이었다. 그런데… 기괴하다고 생각한 그 이미지에 나도 모르게 젖어들어 버렸다.

    결국, 뉴올리언스 스타일 블러디 메리를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 뉴올리언스에 다녀온 분에게 선물받은 핫소스가 방아쇠가 되었다. '뉴올리언스 핫소스가 생겼으니 블러디 메리를 만들자!'라는 흐름이었다. 토마토 주스에 보드카를 타고 타바스코 소스와 우스터 소스와 소금과 후추를 뿌리는 게 블러디 메리의 레시피니 타바스코 대신 뉴올리언스 핫소스를 뿌리면 뉴올리언스 스타일 블러디 메리가 되겠다면서.

    어쨌거나 만들어 보았다. 놀라(NOLA, 뉴올리언스의 줄인 말) 블러디 메리. 베이컨도 구웠다. 토마토 주스와 보드카를 3:1로 타고 우스터 소스와 뉴올리언스 핫소스를 뿌리고 라임즙을 듬뿍 짠 후 소금과 후추를 뿌렸다. 셀러리와 베이컨을 빨대처럼 수직으로 꽂고, 라임은 컵 테두리에 꽂았다. 마셨는데, 눈이 떠졌다. 깜짝 놀랄 정도의 맛이었다.

    전혀 괴이하지 않았다. 놀랍도록 조화로운 이 술을 비우며 나는 놀라 블러디 메리의 비밀을 깨달았다. 술이 아니라 음식이라는 것. 토마토로 만드는 차가운 수프인 가스파초의 알코올 버전이거나. 토마토의 달콤함, 보드카의 씁쓸함, 라임의 산미, 핫소스의 찌릿함, 우스터 소스의 감칠맛, 소금의 짠맛, 셀러리의 식물성 기름 맛에 베이컨의 동물성 기름 맛까지 더해진 이것은 육각형 음식 아닌가 싶었다.
    기고자 : 한은형 소설가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829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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