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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도 상품이다

    조유미 기자

    발행일 : 2024.05.18 / 주말섹션 B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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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 금지 매장의 등장, 침묵을 사고파는 사람들

    말하기 싫다. 듣기도 싫다. 근데 집에 혼자 있기는 싫다, 외롭다.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혼자이고 싶다. 평범한 카페는 싫다, 시끄럽다. 산이나 계곡도 싫다, 벌레 물린다. 공원 가기는 싫다, 앉아 있고 싶다. 길거리 벤치는 싫다, 안정감이 없다. '그럼 어쩌라고?' 묻고 싶은 사람을 위해 자본주의가 해법을 찾았다. 입 벙긋 못 하는 '대화 금지' 매장의 소리 없는 등장.

    침묵도 상품이다. 전국 곳곳에 대화 금지 카페, 대화 금지 술집, 대화 금지 식당이 늘어가고 있다. 누구나 입이 있으니 말을 하고 싶다. 인간의 욕망 중 하나는 '썰욕'이라는 썰(說)도 있다. 그런데 침묵 판매업은 성황이다. "정신 차리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는 이용 후기가 보인다. 침묵을 사고파는 시대에 말 없는 매장을 말없이 들여다봤다. 취재는 손글씨로 쓰거나, 노트북 자판을 살살 두드리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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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 카페. 입장료 1만원에 이용 시간 2시간. 1시간 추가 시 5000원.'

    오후 1시, 점심시간이 끝나면 이 카페에 불이 켜진다. 아현역 근처의 한 '침묵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흔한 "어서 오세요"도 없다. 주인장은 눈인사로만 손님을 맞는다. 주문이나 계산할 때를 제외하면 대화를 할 수 없다. 그마저 불편한 이들을 위해 '글로 써서 주문하시라'며 연필과 포스트잇이 준비돼 있다. 귓속말? 당연히 금지다.

    이용객은 이곳에서 2시간의 침묵과 드립 커피 한 잔을 1만원에 산다. 5000원을 더 내면 침묵을 1시간 더 추가할 수 있다. 테이블 모서리에는 음료가 나온 시각이 적힌 포스트잇이 붙는다. 이 시각부터 '침묵 이용 시간'이 카운트된다. 제한 없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스타벅스가 코앞인데, 하물며 집에서는 공짜로도 말 안 하고 있을 수 있는데, 왜 구태여 이곳에 오는 걸까.

    문을 연 지 1시간 30분이 지났다. 세 자리가 찼다. 그중 손글을 쓰던 프리랜서 박모(33)씨는 '일기'를 쓰기 위해 왔다고 했다.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사색의 공간, 그러면서도 집처럼 늘어지지 않는 공간이 필요했다고.

    저마다 필요한 방식대로 침묵을 소비하고 있었다. 박씨는 침묵 속 '긴장감'을 산다. 그는 "일할 때에도 가끔 노트북을 들고 이곳을 찾는다"며 "잠시 숨 돌리며 옆 사람을 보고 있으면 다들 말은 없어도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아 긴장감이 들고 집중이 잘된다"고 했다. '도서관에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여유도 없이 각 잡힌 느낌은 싫다"는 답이 돌아왔다.

    반면 직장인 장모(29)씨는 침묵이 주는 '쉼'을 사러 왔다. 그는 "집에 있으면 왠지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냉장고 정리도 해야 할 것 같다"며 "그래서 조용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할 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도피한 것"이라고 했다.

    사연은 달라도 배경에는 '소음을 피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말이 소음이 된 시대 아닌가. 카페 사장 정윤영(53)씨는 "듣기 싫어도 귀가 있어 듣게 되는 말이 너무 많지 않으냐"고 했다. 대화 금지 밥집이 인기인 이유도 비슷하다. 서대문구 한 일식집은 대화 금지 원칙을 어길 경우 '환불 없이 퇴실' 조치한다. 그래도 줄을 선다. '말이 없으니 미각에만 집중하게 된다' '소음에 쫓기듯 빨리 먹지 않아도 된다' 같은 후기 일색이다.

    정적 속 취중 진담

    말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고 하지만 금 대신 은을 택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술집이 아닐까. 내뱉을수록 삼키는 술이 달아지는 공간, '술이 아니라 사람이 좋아서 마신다'는 술꾼들의 단골 멘트가 무색하게 사람과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술집이 등장하고 있다. 서울은 물론 경기도 수원, 전북 군산 등에 속속.

    '일행 간 대화는 잠시 넣어두세요.' 오후 9시, 을지로에 있는 대화 금지 술집에 들어서니 독서실에서나 볼 법한 문구가 보인다. 이곳에서는 카카오톡 메시지나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만 주문할 수 있다. 총 6개 소규모 좌석이 2시간 단위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주말엔 빈자리를 찾기 힘들 만큼 인기다. 말이 없는 대신에 음악이 있다. 1인당 신청곡 3곡을 받아 좌석 맞은편 대형 스크린에 뮤직비디오와 함께 띄워준다.

    이용객은 '집단 침묵'이라는 경험을 산다. 옆자리 대학생 박고은(23)씨에게 '집에서 노래 틀고 혼자 술 마셔도 될 텐데'라고 하자,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는 답이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혀 돌아왔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정말 저처럼 음악 듣고 술만 마시러 온 거잖아요. 동질감 같은 게 느껴져요. 덜 외롭기도 하고요.'

    취기 때문일까. 대화는 없었지만 소통의 흔적이 있었다. 정적 속에서의 감정을 글로 공유하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포기하기 싫다.'(3월 23일) '왜 나에겐 흔한 회사 생활 하나가 이리도 힘겨운 걸까. 난 결국 퇴사를 했다.' '우린 을지로의 노을을 사랑했다. (…) 저 같은 건 잊고 행복하세요.'(4월 29일) 누구나 쓸 수 있는 테이블 위 공용 노트에는 익명의 이야기가 빼곡했다. 타인의 일기에 '힘내세요' '응원해요' 같은 답글을 단 사람도 있었다. 친구와 함께 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김모(27)씨는 "침묵이 있기에 더 솔직해질 수 있다"고 했다. 소음은 싫지만 소통은 하고 싶은, 혼자이고 싶지만 마냥 혼자이기 싫은 요즘 세대의 취중 진담.

    텍스트도 시끄럽다

    소음을 피하기 위한 노력은 이어진다. 들려야만 소음이 아니다. 날 좀 보라고 소리 없이 아우성 치는 휴대전화 속 메시지도, 그 속에서 범람하는 정보들도 소음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사람들은 '디지털 침묵'을 돈 주고 사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사용 전면 금지 카페.' 실로 불편해 보이는 카페가 강남구 한복판에 등장했다. 이용객은 입장할 때 입구에 마련된 금고에 휴대전화를 '자진해서' 넣는다. 노트북·태블릿PC 등 모든 전자기기 사용은 금지된다. 평일 기준 1만5000원을 지불하면 음료와 함께 '종일 디지털로부터 침묵할 자유'가 주어진다. 경북 포항에 있는 한 카페에서는 2시간 동안 카운터에 휴대전화를 맡기면 핸드 드립 커피를 공짜로 내주기까지 해 화제가 됐다.

    불만투성이일 것 같지만, "5시간 동안 휴대전화 안 보니 속이 후련하다" "의외의 일탈감이 든다"는 후기가 가득하다. 휴대전화를 멀리하고 얻은 행복이다. 주말마다 이런 카페를 찾는다는 유혜연(32)씨는 "조용한 공간에 있는다고 조용한 게 아니다"라며 "단체 대화방에 뜨는 알림 개수만 봐도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아 속이 시끄럽다"고 했다.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전문가들은 코로나 기간을 거친 세대가 성인이 되고 1인 가구가 지속적으로 느는 만큼 이런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고 본다. 침묵을 넘어 완벽한 비대면을 추구하게 될 수도 있다. 일본 지바현 후나바시시의 대화 금지 카페 '카페 콰이어트(Cafe quiet)'는 벽과 마주한 좌석에 앉아 휴대전화로 QR코드를 찍어 주문을 하면, 벽에 뚫린 아주 작은 구멍으로 직원이 메뉴를 건네준다. '얼굴 보고 주문하기도 싫다'는 것이다.

    침묵을 사고파는 현상은 과도하게 연결된 현대사회에서 소음처럼 느껴지는 의미 없는 말과 진솔한 소통을 구분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소통은 인간의 사회적 본능"이라며 "다만 1분1초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초연결 사회에 지친 이들이 반대 급부로 대화 금지 매장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가수 이태원은 지금의 사회를 41년 전 예측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권태 속에 내뱉어진 소음으로/ 주위는 가득 차고….'
    기고자 :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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