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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36) 빛의 들판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발행일 : 2024.05.18 / 여론/독자 A2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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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의 유엔본부 인근에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태양열로 작동되는 1만8000여 개의 광섬유 전구가 7000평 공터에 펼쳐진 작품이다. 엄청난 크기의 캔버스에 빛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하다. 공간이나 사물을 밝히는 용도로서의 빛이 아니라 빛 자체를 전시하는 개념이다. 섬세한 색상과 채도의 점이(漸移)가 펼치는 '빛의 조경'은 벌판을 꽃밭으로 바꾸었다. 조명 하나하나가 맨해튼 이스트리버의 강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리는 형태가 영락없는 꽃이다.

    이 설치는 영국 아티스트 브루스 먼로(Bruce Munro)의 '빛의 들판(Field of Light)'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2004년 런던의 하비 니컬스(Harvey Nichols) 백화점에 처음 설치한 이후 반응이 좋아 곧바로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과 구겐하임 미술관에도 초대전이 이어졌다. 이후 전시는 호주의 울룰루(Uluru)의 대형 바위 앞 붉은 모래사막, 덴마크의 안데르센 공원 등 전 세계 20여 군데에서 조금씩 변형되며 설치되어왔다.

    벌판을 거닐며 고개를 올려다보면 직사각형의 유엔 본부, 크라이슬러 빌딩의 첨탑 조명이 눈에 들어온다. 작가의 작품은 자연환경에도 어울리지만 도심 한복판에서도 꽤 잘 어울린다. 빌딩의 불빛과 네온사인, 엘로 캡의 헤드라이트들이 교차하며 밤에도 빛으로 가득 찬 곳이 뉴욕이다. '잠들지 않는 도시'에 상주하는 수많은 불빛 속에 또 다른 형태의 빛이 첨가되었지만 그 빛은 특별하다. 뉴욕의 일상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로 변환시켜주는 마법을 발휘한다.

    2023년 12월 13일 시작된 전시는 공터를 개발하는 주체인 솔로비브(Soloviev) 그룹의 공공 미술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고층 건물들을 지어 올리기 전, 허가와 검토 과정의 일 년간 비어있는 땅을 이용해서 시민에게 대지예술을 선사한 것이다. 그래서 같은 작가의 다른 장소 전시와 다르게 무료다. 관객들은 전시가 시작되는 저녁 무렵부터 천천히 이 빛의 사파리를 즐긴다. 몰입형 전시지만 인위적으로 감상을 강요하는 장치는 없다. 작품의 '이해'보다 '느낌'이 중요하다는 작가의 의도대로 그저 바라보고 거닐다가 각자 자신의 상상과 기억을 품고 떠나면 된다.
    기고자 :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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