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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로봇 심판 시대를 불평하는 자 누구인가

    이위재 스포츠부장

    발행일 : 2024.05.13 / 여론/독자 A3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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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 마라도나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유명한 '신의 손(Hand of God)' 사건을 일으켰다. 핸드볼로 골을 넣어놓고 "머리와 '신의 손'이 함께 만들어낸 골"이라면서 적반하장으로 대응했다. 사실 사건 핵심은 주심 잘못에 있다. 주심은 물론, 선심까지 그 장면을 놓치는 바람에 일어난 희극이다.

    만약 지금처럼 비디오 판독(VAR· Video Assistant Referees)이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골은 당연히 무효로 처리되고 마라도나는 일부러 공을 손으로 건드렸으니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당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이 결정적 오심(誤審) 덕에 잉글랜드를 2대1로 누르고 4강에 올라 결국 월드컵 제패라는 화려한 피날레를 완성했지만 VAR이 있었으면 잉글랜드가 이겼을 가능성이 크다. 아르헨티나로선 팀 전력 절반 이상이라는 마라도나 퇴장 공백을 메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스포츠 역시 자본 놀음이란 빈정도 있지만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눈앞에서 부정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위안이 있다. 그런데 오심이 이런 기대를 훼손하곤 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훈계는 주로 이긴 팀에서 설파하는 궤변일 뿐이다. 전에는 명백한 오심이 나와도 심판이 우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부조리는 사라지고 있다. 수십 개 카메라와 센서가 경기장 곳곳에서 인간 능력으로 잡아낼 수 없는 영역까지 짚어 정확한 판정을 이끌어낸다. 축구에서 야구, 배구, 배드민턴, 농구, 경마까지 '로봇 심판'을 활용해 판정 정확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확산하고 있다.

    최근 프로야구에서는 올해 도입한 '로봇 심판', 자동 투구 판독 시스템(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을 놓고 선수들 불만이 터졌다. 한화 투수 류현진이나 KT 타자 황재균이 대표적. 둘 다 1987년생. 프로 경력만 각각 18년, 17년 차 업계 대선배다. 똑같이 불평하지만 내용은 또 반대다. 류현진은 스트라이크를 볼로, 황재균은 볼을 스트라이크로 잡는다는 항의다.

    류현진은 미국으로 가기 전 2012년 '인간 심판' 시절 투구 중 스트라이크 볼 비율이 64.5%, 35.5%였다. 올 시즌은 68.3%, 31.7%. 로봇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더 잡아 주고 있는 셈이다. 국내 프로야구 투수들 전체 투구 스트라이크 볼 비율도 올 시즌은 62.9%, 37.1%. 최근 5년간 61.8~63.6%, 36.7~ 38.2%와 별 차이 없다. 달라진 건 류현진이 올 시즌 2승 4패 평균자책점 5.65로 데뷔 후 최악 성적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황재균도 과거엔 평균 삼진 1개당 볼넷을 0.4~0.6개 정도 뽑았다면 올 시즌은 0.5개다. 스트라이크 볼 판정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게 잘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그 역시 타율 0.255 무홈런 10타점으로 2010년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다. 이 수치만 갖고 모든 정황을 설명할 순 없겠지만 일이 안 풀린다고 외부 탓을 하는 느낌이다.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는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거부감을 갖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손해다. 빨리 인정하고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은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맞을 거라 본다.
    기고자 : 이위재 스포츠부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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