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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이 만난 사람] 태영호 의원이 돌아본 21대 국회

    김윤덕 선임기자

    발행일 : 2024.05.13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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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선 선물로 톱? 내 치열했던 4년, 北 엘리트층 격하게 흔들었을 것

    낙선한 태영호는 당선한 윤건영에게 꽃다발을 건네 화제가 됐지만, 정작 자신은 "낙선 선물로 톱을 받았다"며 웃었다. "선거에서 떨어지니 공연히 위축된다"고도 했지만 이북 사람 특유의 '뚜꺼먹지 않는' 근성이 말씨에 우러났다. 이삿짐 싸느라 부산한 의원회관 909호에서 태 의원을 만났다. 낙선자의 제1 수칙은 '부엌 점령'이라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원숭이와 국회의원의 차이

    ―윤건영 의원이 톱을 줬다는 건가?

    "윤 의원이 아니고 구로의 철공소 사장님이 주셨다."

    ―톱을 왜?

    "아, 끔찍한 상상은 마시라(웃음). 이제 국회를 떠나니 집에 일할 공간이 필요해 망치, 줄자 같은 공구를 사러 갔는데, 톱도 필요하다고 하니 사장님이 톱은 선물이라며 공짜로 주시더라."

    ―방을 사무실로 개조한 건가?

    "서재를 태영호 TV(유튜브) 촬영 장소 겸 사무실로 사용하려고 접이식 침대를 거실로 옮겼다. 접이식 침대는 다리 4개를 톱으로 잘라 거실 소파와 연결해 침대로 사용한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라는 여의도 정가의 속언을 실감하고 있다(웃음)."

    ―낙선의 충격에선 벗어났나?

    "나는 낙선했지만 태영호 자체는 실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구로로 옮겨 출마한 바람에 북한의 통일전선부나 동료 외교관들이 서울 구로라는 지역과 민주적 선거제도에 대해 더 자세히 공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험지'라는 말도 배웠을 테고(웃음). 더구나 낙선을 해서, 태영호가 국회의원 된 것이 국정원 조작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국정원의 조작이라니?

    "4년 전 내가 강남 갑에서 당선됐을 때 북한은 남한 정부가 북한 붕괴 전략의 일환으로 태영호를 조작 당선시킨 거라고 선전했었다."

    ―태영호의 의정 활동 4년이 북한에 영향을 줬을까?

    "조선 시대 양반 계급이 이조 왕실과 연대해 특권을 누렸듯이 북한의 기득권층은 김정은 체제와 연대해 특전을 누려왔다. 일반 주민이 통일을 간절히 원해도 엘리트층이 움직이지 않으면 요원하다. 그런 점에서 나의 행보는 중요하다. 김정은 체제의 지속 가능성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 엘리트층이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일 때 자신들이 그 안에서 살아남을지 타진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태영호가 남한에서 차별받지 않고 상승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에 자극될 것이고, 이는 북한 체제에 변화를 줄 단초가 될 수 있다."

    '이·조 심판' 불발된 까닭

    ―왜 구로였나?

    "보수의 텃밭에서 4년 동안 정치를 배웠으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탈북민이라고 특혜를 받는 것은 민주주의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4·3 막말' 같은 악재도 있었다.

    "정치인은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 역사학자와 달리 자신의 말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없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그걸 놓쳤다. 정치적으로 미숙했다."

    ―그래서 험지인 구로를 택했나?

    "20년 동안 우리 당이 한 번도 당선되지 못한 곳이라 의욕이 생겼다. 당협위원장도 없을 만큼 조직적 기반이 취약했다."

    ―승산이 없었을 텐데.

    "그렇지 않다. 구로에 처음 갔을 때 20년 동안 민주당이 뭘 했는지 의문이 들 만큼 노후돼 있더라. 주민들도 이제는 좀 바꿔보자는 분위기여서 모종의 기적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왜 또 민주당을 찍었을까?

    "이재명 대표가 온 국민에게 현금 25만원을 주겠다고 한 것이 변곡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가뭄에 단비라고 할까. 지역 상인들이 '정부와 여당은 우리 힘든 상황을 알고 있기나 하냐'고 물을 때 참 난처했다. 나라 곳간을 쥐고 있는 당신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느냐, 묻는 거였다."

    ―포퓰리즘 아닌가?

    "물론 우리 당은 재정 건전성을 위해 반대할 수밖에 없지만, 국민은 돈 25만원이 아니라 정부와 여당의 따뜻한 제스처를 원했다고 생각한다."

    ―'이·조 심판' 전략의 실패이기도 했다.

    "나도 이·조 심판을 적극 지지했다. 조국 신당이 나왔을 땐 박수도 쳤다. 얼마나 뻔뻔한 사람들인지 비교 전략으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금리·고물가로 고통받는 국민은 누가 더 뻔뻔한 범죄자인가엔 관심이 없었다."

    ―강남과 구로의 차이도 느꼈겠다.

    "구로가 발전하려면 대통령, 서울시장처럼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리더십이 절대 필요하다. 산업화 때 난개발된 벌집촌이 지금도 계속해서 슬럼화되고 있다. 재개발을 하려면 엄청난 추가 분담금이 발생하고, 용적률 특혜 같은 해법이 나와야 하는데 형평성 문제로 막혀 있다. 윤건영 의원은 재개발 지역 주민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지만, 그건 재개발 안 하겠다는 소리다. 건물과 건물 사이가 얼마나 좁은가 하면 창문 열고 옆집 사람과 술잔을 부딪힐 수 있을 정도다. 자전거 한 대 못 지나갈 만큼 골목이 좁아 불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내가 당선됐다면 정부, 서울시와 싸워서라도 구로에 특화된 용적률을 받아냈을 것이다."

    북한 MZ세대가 김정은 체제 위협

    ―꽃다발을 건넨 윤건영과는 외통위 시절 앙숙이었다.

    "내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앞장서 공격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너무 희망적 사고에 빠져 있었다. 청와대를 떠나는 날까지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충격받았다. 과연 진심인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던 건지 지금도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도 최소한의 평화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윤 정부의 반북 대결 정책으로 남북 관계가 최악이 됐다는 건 민주당 선동이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 때 남북 관계는 최악이었고 안보도 위태로웠다. 남북 연락사무소가 폭파됐고,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도 문 정부 때 일어났다. 당장 전쟁을 할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김정은의 블러핑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북한은 지금 전쟁을 일으킬 상황이 아니다.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어서 대연합부대 전쟁 훈련도 못 하고 있다. 이럴 때 한미가 연합해 치고 들어올까 봐 걱정하고 있다."

    ―남한의 핵무장을 주장해왔다.

    "핵이 없으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더 고도화되고 남한의 미국 의존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트럼프가 부유한 한국을 왜 미국이 지켜줘야 하냐며 압박하지 않나.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는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 우리 안보 문제를 독자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 가능하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따를 텐데.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고 핵무장으로 갈 때를 생각해봐라. 중국과 러시아가 핵무기는 안 된다고 하자 북한이 조건을 걸었다. 너희가 한미연합훈련을 중지시켜주면 핵 개발도 중단하겠다고. 중·러가 이걸 들어줄 수 없으니 북은 핵을 개발할 명분을 얻은 거다. 이게 북한의 외교술이다. 핵무장이란 목표를 일단 세우면 다양한 옵션을 걸어 협상해 갈 수 있다. 한국 정치인들이 미국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렸다."

    ―K팝, K드라마를 아는 MZ세대가 북한 사회의 중심 구성원이 되면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도 했다.

    "얼마 전 남한 드라마를 본 북한 고교생들을 수갑 채워 끌고갔다는 뉴스가 있었다. 북한과 같은 이념 체제를 유지하려면 처벌과 계도의 영역을 잘 맞춰가면서 세뇌시켜야 하는데, 김정은 정권이 형사처벌에 집중하는 상황을 보면 점점 지탱하기 힘든 단계로 가는 게 아닌가 싶다. 딸 김주애는 하이힐에 롱코트를 입혀 공개하면서 일반 학생들 통제는 강화하는 것이 상징적이다. 김주애에게 반감을 가진 10대들이 주류가 되면 정권의 지탱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부엌을 점령하라

    ―4년 의정에서 뭐가 가장 아쉬운가?

    "북한인권재단을 끝내 출범시키지 못한 것. 여야 합의로 북한 인권법을 만들고도 민주당이 이사 추천을 안 해 재단이 표류하는 걸 비판했더니 '쓰레기' '빨갱이'라고 비난하더라. 민주당처럼 삭발도 하고 매일 본회의장 앞에서 피켓 시위 안 한 걸 후회하고 있다."

    ―민주당처럼?

    "외통위만 가봐도 그들의 노련한 팀 플레이를 볼 수 있다. 외교부, 통일부 장관을 불러놓고 어느 지점을 공격할지 과업을 정하면 서로 역할 분담을 해가며 몰아붙인다. 구멍이 뚫릴 때까지. 회의장을 끝까지 지키는 것도 대부분 민주당 의원들이다. 대개는 자기 발언만 하고 자리를 뜨는데 민주당은 박병석 전 의장부터 중진 의원들이 아침 8시부터 저녁까지 앉아 있다. 상임위 출석률과 질의 내용이 공천에 비중 있게 반영되는 것도 이유다."

    ―국힘 이용호 의원은 태영호가 한국 정치의 나쁜 점을 너무 빨리 배웠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어떤 취지의 발언인지 모르겠지만, 원내에서 여야가 치고받고 싸우다 보면 거센 표현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 정치에서 나쁜 점만 배웠다면 윤건영 의원에게 꽃다발을 건넸겠는가(웃음)?"

    ―'태영호 TV' 구독자가 30만을 목전에 두고 있더라.

    "300명 국회의원 중 둘째로 구독자가 많다. 1위인 이재명 채널이 최근 100만명을 돌파했대서 더욱 분발하려 한다."

    ―천리마 스타일이라더니, 낙선하고도 바빠 보인다.

    "아침 7시면 일을 시작한다. 집사람이 백수가 왜 알람을 켜고 자냐고 타박한다(웃음). 나의 가장 부족한 점이 휴식할 줄, 뚜꺼먹을(땡땡이칠) 줄 모르는 거다."

    ―'부엌을 점령하라'가 낙선자 제1 수칙이라고 했던데.

    "6월부터 백수이니 식구들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가장이라고 폼 잡을 일도 없고, 소파에 드러눕기도 미안하다. 그래서 스스로 밥도 짓고 라면도 끓여먹고 세탁도 직접 한다. 사람들은 한국의 거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데 나는 다이내믹해서 좋다. 우리 집만 봐도 8년 새 급격히 민주화됐다. 탈북 전엔 집안 서열 1위였던 내가 지금은 꼴등이다(웃음)."

    ☞태영호

    1962년 평양 출생. 베이징외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주덴마크 북한대사관, 주스웨덴 북한대사관, 주영국 북한대사관 등에서 23년간 근무했다. 2016년 주영국 북한 공사로 근무하던 중 탈북, 21대 총선에서 강남 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했고 국민의힘 최고위원을 지냈다. 저서로 '3층 서기실의 암호' '태영호의 서울생활'이 있다.
    기고자 : 김윤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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