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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임시 가설물 8500여개 달해… 모두 이으면 몬트리올까지 닿아

"아, 저것 때문에 또 잘 안 보이네."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성추문 입막음'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미 뉴욕 맨해튼 100 센터 스트리트 형사법원 앞에 모여 있는 전 세계 매체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푸념이 종종 나온다. 이 재판이 진행되는 법원 1층 외부의 공사용 임시 가설물 '비계(飛階·scaffold)' 때문이다. 쇠로 된 봉이 여럿 세워진 가운데 그 위를 덮은 짙은 녹색 가림막이 법원을 드나드는 유명 인사를 포착하려는 기자들의 시야를 가리기 일쑤다.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기자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미국 전직 대통령 최초로 기소된 트럼프가 기소인부(기소 이유를 말해 주고 피고인이 유죄·무죄인지 답변하게 하는 것) 절차를 밟으려 이 법원에 들어가던 지난해 4월에도 이곳에 설치돼 있었던 비계는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였다.

뉴욕에 처음 와보는 사람들이 놀라는 점 가운데 하나는 뉴욕이 발길 닿는 곳마다 비계가 있는 '비계 숲'이라는 것이다. 뉴욕시에는 8500여 개의 비계가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비계를 모두 펼쳐 놓으면 맨해튼에서 캐나다 몬트리올까지 닿을 수 있다"고 했다. 맨해튼에 비계가 많은 이유는 1979년 사고 때문이다. 당시 그레이스 골드라는 한 대학생이 길을 걷다가 건물에서 떨어진 파편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1998년 비계 설치와 관련된 법이 제정됐다. 이 법에 따르면 6층 이상의 모든 뉴욕시 건물은 5년마다 전문가 검사를 받고, 공사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판단을 받은 건물은 비계를 설치하고 보수공사에 나서야 한다.

문제는 공사가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수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데다, 수리 이후에도 검사가 지연되거나 인·허가가 늦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비계 하나당 평균 설치 일수가 498일에 달하는 이유다. 5년 이상 세워져 있는 비계도 200여 개나 된다. 마크 레빈 맨해튼 구청장은 '터무니없이 오랫동안 세워져 있던 공로를 인정한다'면서 오래된 비계 순위를 공개하기도 했다. 맨해튼에서 가장 오래된 비계는 1번가의 한 건물에 있는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취임한 2009년 세워졌다.

뉴욕시에서 비계 설치가 워낙 자주 있는 일이다 보니 관련 사업도 규모가 크다. 가장 흔한 비계는 짙은 녹색이고, 천장 부근에 문양이 새겨진 흰색 비계는 가격이 비싸다고 한다. 아름다운 비계 문양을 따라 했다는 이유로 비계 회사끼리 소송을 하는 경우도 있다. 비계는 건물 세입자와 보행자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다. 세입자들은 "비계 때문에 햇빛이 들지 않는다"고 불만이고, 뉴욕 시민들은 "비계를 피해 걷는 것도 불편하다"고 투덜댄다. 레빈 구청장은 "비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이 말을 쉽게 믿는 사람은 드물다. 기고자 : 윤주헌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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