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3년 만에 시집 펴낸 시인 최영미

잔치는 끝났지만, 파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인 최영미(63·사진)가 3년 만에 시집 '아름다움을 버리고 돌아와 나는 울었다'(이미)를 펴냈다. 2013년에 낸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에서 신작 시 열 편을 더한 개정 증보판.

'팜므파탈의 회고'로 문을 연다. 시는 '내가 칼을/다 뽑지도 않았는데/그는 쓰러졌다/그 스스로/무너진 거다'로 시작해 '지루한 소문이 귀걸이처럼 달린/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나갔다'로 끝난다. 2017년 12월 시 '괴물'을 발표하면서 시인 고은의 문단 내 성폭력을 폭로한 일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그'를 특정 짓게 된다. 최영미는 본지에 "그를 떠올리며 쓴 건 아니다"라고 했다. 작년 2월쯤 메이지 유신 관련 강의를 듣다가 유혈이 낭자하던 시기를 상상하며 불현듯 떠올린 문장. "하지만 읽는 이들이 특정 인물을 떠올린다면 그건 내가 막을 수 없죠." '팜므파탈'이 자신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란다. "나는 누구를 파멸시킬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푼수, 허당이에요."

시 '에든버러 북토크'에서는 20년 전 미국 워싱턴 셰익스피어 도서관에서 'N시인'과 자신을 초대했지만, 그와 같이 가고 싶지 않아 거절한 일화를 소개한다. '그와 같은 시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 셰익스피어 도서관의 초대를 거절하고 나중에 후회했어요. 내 시를 해외에 알릴 좋은 기회였는데….'

싸움에서 이긴 '센 언니'의 후일담일까. 최영미는 "나는 내가 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리고 겁이 많다. 겁이 많아 운전도 못 한다"고 했다. 그래도 특유의 강인함으로 삶을 붙들고 놓지 않는 법을 안다. 서정적인 생활 시들도 돋보인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삶의 무게에 한없이 짓눌리는 날. 그럴 때 시인은 "수건이나 개자"고 한다. '그래도 가야만 하는…/빨래하고 수건이나 접자/되는 일 없는 때는…'('돌고 돌아' 중에서).

30년 전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인생이 계속되기에 파티는 이어진다. 최영미는 "(과거에 쓴) '잔치'와 이번의 '파티'는 다르다.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했다. '상처가 꽃이 되었다. 잇몸에서 피가 멈추고 파티는 끝나지 않았다'('에든버러 북토크' 중에서). 시집의 제목은 2부에 수록된 시 '옛날 남자친구'에서 따왔다. 그가 선물한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꽃바구니를 버리는 내용. 어쩌면 그것이 새로운 시작이다. 기고자 : 황지윤 기자
본문자수 : 1207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