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최근 글램핑장을 예약하려다 '끔찍한 혼종'이란 말이 떠올랐다. 여럿이 섞여서 본래보다 좋지 않은 상태가 됐음을 일컫는 말. 3년 전 방문 당시 예약 조건에 '40대 이상 커플 예약 불가'가 포함돼 있어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지만, 가까운 글램핑장으로 그만한 곳이 없었다. 달라진 예약 안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40대 이상 중년 필독 바랍니다. 호텔과 리조트가 아니라 시설이 많이 협소하니 불편할 것 같은 분들은 예약을 삼가주세요." 그러나 사실은 달라진 게 아니었다. 예약 막바지에 단서 조항이 있었다. "겨울철 추위 문제로 4월까지 50세 이상 부모님은 동반 금지합니다."

'겨울철 추위'와 '4월까지'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4월은 따뜻한 날씨로 야외 활동 수요가 가장 높아지는 때 아닌가. 업체 측이 원하지 않는 50대 이상의 예약을 줄이기 위해 나름대로 방법을 마련한 걸로 보였다. 사설 업체가 자의적으로 특정 연령대의 예약을 거부하는 일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이 업체는 수년 전부터 20~30대를 겨냥한 글램핑장임을 밝혀 왔다. 하지만 혼종에 대한 유감은 있다. '노(No)중년존'도 '예스(Yes)중년존'도 아닌 이 모호한 표현이라니. 각종 온라인 글을 보면 '노중년존'이란 단어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지속적으로 항의했던 모양이다. 업체 측으로선 그 절충안으로 혼종이 되기를 선택한 듯하다.

한편으로 이해도 된다. '노키즈존'에서 시작한 선택적 허용 논란이 과열되고 있고, 이젠 '노'라는 수식어만 붙으면 일단 분노가 시작된다. '노시니어존'(고령자 금지)이나 '노프로페서존'(교수 금지)은 물론 '노타투존'(문신 금지)도 생겼다. 작년엔 한 프랜차이즈 카페 업주가 고령 고객에게 "매장 이용 시간이 너무 길다. 젊은 고객들이 안 온다"는 취지의 쪽지를 건네 논란이 됐었다. 본사 측에서 사과문을 올렸는데, 해당 고객이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7시간 동안 앉아 있었단 게 뒤늦게 알려지자 반응은 엇갈렸다.

'노'에 민감한 사회에서 혼종은 늘어나고 있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 시즌2는 여성 출연자 비율을 25% 가까이 늘렸지만, 신체적으로 남성이 유리한 조건의 종목으로 경기를 대부분 구성해 논란이 일었다. '성별·체급 불문'한다는 구호가 무색하게, 차라리 남녀를 따로 대결시키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특정 성별에 대한 '노'가 금기시되는 분위기에서 '예스'를 외쳤지만, 재미도 이슈도 놓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지난해 시즌1은 한국 예능 최초로 넷플릭스 TV쇼 부문 글로벌 1위에 올랐지만, 이번에는 비영어 TV쇼 부문 1위에 만족해야 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가 아니라 '예스'가 나아갈 길은 맞는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체나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특정 계층이 소외되는 일이 반복되면 그들이 설 자리가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예스'는 '노'만도 못한 법. "여름철 더위 문제로 12월까지 입장을 금지한다"는 유의 끔찍한 혼종은 제발 사양한다. 기고자 : 이영관 산업부 기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496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