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1977년 극장 앞 관객 줄 서게 한
추송웅 배우의 '빨간 피터의 고백'
배우 장두이가 음악극으로 각색
'서울 모노드라마 축제'서 공연

서울 을지로에서 남산 1호 터널로 올라가는 삼일로 변 가파른 언덕 위, 명동 창고극장 이야기는 이제 연극계의 전설이다. 1977년 8월, 나비넥타이 정장 차림의 기묘한 원숭이 한 마리가 이 극장에 나타나자 관객은 숨을 죽였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잡혀 와 서커스 스타가 된 연극 속 '빨간 원숭이'는 비좁은 무대의 사다리와 그네를 오르내리며 세상을 조롱했고, 사람들을 향해 자유란 무엇인가 물었다. 당대의 명배우 추송웅(1941~1985)의 1인극 '빨간 피터의 고백' 공연이 있는 날이면 관객 줄은 극장 앞 허름한 매표소부터 삼일로를 돌아 명동 성모병원(현 가톨릭회관)까지 이어졌다.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각색한 이 연극은 1977년부터 83년까지 15만여 관객을 모으며 우리 연극의 신화가 됐고, 명동 창고극장을 70~80년대 소극장 운동의 진원지이자 실험 연극의 산실로 만들었다.

이 작은 극장은 여러 사람 손을 거치며 폐관과 재개관을 거듭했다. 2013년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고 2018년 리모델링해 재개관했다. 50석 규모인 지금 이름은 '삼일로 창고극장'. 올해부터 서울시로부터 민간 위탁 운영을 맡은 서울연극협회는 오는 11일 이 극장에서 '2024 서울 모노드라마 페스티벌'을 시작한다. 빨간 원숭이가 된 추송웅이 불씨를 댕겼던 1인극의 불꽃을 다시 그 역사의 현장에서 피워 올리려는 노력이다.

이번 페스티벌에선 추송웅의 원작과 같은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배우 장두이가 음악극 형식으로 전면 각색하고 직접 무대에도 서는 1인극 '돌아온 빨간 피터'(극단 '함께 걷는 사람들')가 공연돼 기대를 모은다. 해외 작품은 2편. 개막작은 네덜란드에서 온 '푼다 킵스 롤링 온(Funda Keeps Rolling On)'. 하반신 마비의 장애인이 휠체어를 탄 채로 자기 인식과 상실, 가족과 위선 등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한다. 영국 창작자 에밀리 카딩이 셰익스피어 원작을 재구성한 '리처드 3세'는 관객이 극 중 배우로 참여하는 참여형 공연으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한국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최초 응원단장이었던 실제 인물 '임갑교'를 모티브로 한 '하이타이'(극단 '도시락), 한국의 전통 '굿' 형식을 차용한 '지정남의 오월 1인극 환생 굿'(극단 '지정남'), 광대가 되고 싶었던 노인의 삶을 가면극 형식으로 만든 '더 원(The One) 시즌3'(극단 '창작집단 거기가면'), 배우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든 '어느 배우의 이야기'(극단 '아리') 등이 공연된다.

서울연극협회는 이번 페스티벌에 총 112편(해외 20개, 국내 92개)이 참여를 신청해, 그중 해외 초청 2팀, 국내 5팀의 총 7편을 무대에 올린다고 밝혔다. 완성도 높은 1편을 선정해 '이집트 샤름엘셰이크 국제 청년 연극제(SITFY) 모노드라마 경연' 참가 자격과 지원금도 줄 계획이다. 협회는 "극장은 단순히 공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상생하는 공간"이라며 "삼일로 창고극장에 '빨간 피터의 고백' 포토존을 설치해 누구나 방문하고 즐길 수 있도록 꾸몄다"고 했다. 기고자 : 이태훈 기자
본문자수 : 1555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