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미 권력 서열 3위인 마이크 존슨 연방 하원 의장의 입지가 휘청거리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그가 임기를 시작한 지 불과 6개월 만이다. 같은 당 케빈 매카시 의장은 작년 10월 당내 소수 초강경파들에 의해 해임됐고, 이들 승인으로 존슨이 후임으로 낙점됐다. 그런데 같은 세력들로부터 또다시 축출 위협을 받고 있다. 매카시가 쫓겨났을 때처럼 "적(敵)인 민주당과 치열하게 싸우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하원 경력 8년 차 '주니어' 의원인 존슨은 트럼프 지지를 업고 선출됐다. 그만큼 강성 친(親)트럼프 성향이다. 그런데도 같은 친트럼프 진영의 마저리 테일러 그린 의원이 그에 대한 해임안을 제출했다. 어떻게든 민주당과 대화해 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자신의 일인 존슨은 "대화로 풀자"며 쩔쩔매고 있다. 입법 절차 진행, 상임위 분배, 특위 설치 등 막강한 권한이 부여되는 미 하원 의장 위신이 이렇게 땅에 떨어진 적이 없다.

얼마 전까지 의장 해임안 상정은 민주·공화 양당이 찬성해야 가능했다. 그런데 전임 매카시가 강경파 지지를 얻으려고 한 명만 나서도 해임안 발의가 가능하도록 기준을 낮췄다. 새 규정이 결국 스스로를 찔렀다. 소수가 언제든 전체를 흔들 수 있는 구조가 됐다.

지도부가 의원들의 기강을 잡을 수 있는 도구가 없는 건 아니다. 지역구 예산 배정 권한을 두고 개별 의원들과 '밀당'하면서 독단 행동을 막아왔다. 2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하원 의원들에게 '쪽지 예산' 삭감은 치명적이다. 그런데 이런 권한들마저 지난 1년 새 유명무실해졌다. 양당 갈등으로 법안이 계류되는 일이 잦아지자 한 표가 절실해진 지도부는 의원들 눈치만 보고 있다. 리더십 실종, 통제 불능이라고 혀를 찰만 하다.

그런데 부정적으로만 볼 일인가. 지난 대선 때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7000만 이상 유권자들에게 현 상황은 '정치 혁명'이다. "그 잘난 워싱턴DC 정치인들이 우리에게 뭘 해줬느냐"던 이들은 주류 정치권이 관료주의와 비효율에 얽매여 있다며 '늪(swamp)'이라고 조롱해 왔다. 범죄 대응 권한 약화, 과격한 에너지 전환, 성소수자·트랜스젠더 지원 정책을 밀어붙이는 민주당을 결사 저지하는 소수 강경파는 7000만명에겐 영웅이다. 미 다수 국민의 이념과 정치관이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를 논하는 건 별개 문제다. 적어도 미 정치권이 그 어느 때보다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당 지도부가 무소불위의 '마이웨이' 권력을 휘두르는 한국 정치판에선 상상하기 힘들다. 이번에도 공천권을 틀어쥔 당대표에게 밉보이면 '비명횡사'하고, 조아리면 상식 이하의 후보가 온갖 막말과 비리 의혹으로 질타받아도 간택받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한국 정치는 4류' 평가가 나온 지 30년이 다 돼간다. G8 진입을 기대하는 나라의 정치가 이렇다는 걸, 미국에서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았다. 기고자 : 이민석 워싱턴 특파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44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