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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칭찬 처음 들어봐＂

글 쓰는 일 외에 나에게 가장 많이 들어오는 일은 글쓰기 강연 및 수업이다. 다양한 연령층에게 글쓰기 수업을 해왔지만 이제껏 가장 모범적인 학생들은 노년층에 있었다.

그분들은 비록 수업 시간에 휴대폰을 진동으로 해놓는 것을 깜빡해 벨소리가 울릴지언정, 수업 중에 결코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노트북이나 태블릿PC 대신 종이에 펜으로 수업 내용을 꼼꼼히 기록한다. 돋보기 너머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나고, 약간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말로 다 하지 못할 궁금증이 흘러넘친다. 아무리 썰렁한 개그를 쳐도 자비롭게 까르르 껄껄껄 웃어준다.

수업이 끝나면 앞다투어 달려와 나를 안아주거나 악수를 청한다. 쌍엄지를 치켜든 채 얼굴 앞에서 춤을 추는 분도 있다. 그리고 꼭 '먹을 것'을 챙겨주신다. 덕분에 수업을 끝낸 내 가방은 찐 달걀, 떡, 두유, 빵, 홍삼 젤리 등으로 채워진다. 직접 담근 수제 청을 가져오시는 분도 있다.

며칠 전에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연을 진행했다. 주제는 '세 줄 글 쓰기'. 글을 쓰려고만 하면 몸과 마음이 경직되는 분들을 위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짧은 글쓰기를 제안하는 시간이었다.

먼저 세 줄 일기 쓰기부터 시도했다. 어떤 날은 쓸 말이 많아 길게 쓰고, 어떤 날은 쓸 이야기가 없다는 이유로 안 쓰다 보면 결국 일기를 쓰지 않게 된다. 하지만 좋았던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딱 세 줄만 쓰기를 다짐하면 매일 손쉽게 일기를 쓸 수 있다.

이 설명과 함께 각자 일기 쓸 시간을 가졌고, 완성된 일기를 발표해 보자고 제안하니 모두 짠 듯이 고개를 숙였다. 강의할 때 줄곧 화면과 내 얼굴을 응시하며 경청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하지만 그럴 때 포기하면 안 된다. 수업의 초반에는 기선 제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강생 몇 사람의 이름을 미리 외워두었다가 한 분을 지목하며 '시켰다'. 이름이 불린 어르신은 멋쩍은 듯 웃으면서도 벌떡 일어나 자신의 일기를 발표했다.

물론 일기는 훌륭했다. 사실 일기에 훌륭하고 훌륭하지 않고는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격하게 칭찬했다. "짧은 시간 동안 쓰신 건데 잘 쓰셨죠! 낭독도 너무 멋지게 하셨고요! 자, 박수!" 갈채를 받은 어르신은 종이로 입을 가린 채 수줍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바로 이때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다. 좀 전까지 앞다투어 시선을 피하던 어르신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며 서로 발표하겠다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친다. 그때부터는 굳이 지목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나긴 발표가 이어진다. 나는 그저 인자한 얼굴로 발표 순서만 정하면 된다.

한 차례 발표 잔치(!)가 끝나고, 조금 발전된 단계의 세 줄 글쓰기 체험을 이어갔다. 이번에도 충분한 시간을 드리고 쓴 글을 발표할 분을 찾으니, 또 시선을 피하는 어르신들. 나도 모르게 잔소리했다. "아니, 아까는 서로 발표하겠다고 하시더니 이번에는 왜 시선을 피하세요?" 그러자 교실 구석에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니, 아까 거는 쉬웠는데 이번엔 너무 어려워요!" 그 말에 웃음을 참으며 대꾸했다. "아까 발표하고 싶으셨는데 놓쳐서 아쉬우시죠? 그러게 진작 발표하셨어야죠!" 어르신은 그럴 걸 그랬다는 듯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한 시간 동안의 수업은 금세 지나갔다. 수업을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전원 칠순이 넘은 어르신들 앞에서 어떤 수업을 어떻게 진행해야 좋을지 긴장되고 고민이 많았는데, 다 끝나고 나니 못다 한 이야기들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이번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과분한 포옹과 악수, 쌍엄지 및 일용할 양식(!)들을 받았다. 무엇보다 해맑은 얼굴로 "너무 재미있었어요!"라고 토닥이는 후기들에 피곤했던 몸에 바짝 힘이 돌았다.

몇 년 전, 노년층을 대상으로 첫 수업을 했을 때, 수업이 끝나고 귀가하던 어르신들이 나누는 대화를 얼핏 들었다.

"나 칭찬 처음 들어 봐."

"나도. 이 나이에 어디 가서 그런 칭찬을 들어."

그 말에 앞으로 어떤 수업을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기로 다짐했다. 특히 어르신들에게는 더더욱. 기회가 없어 미처 꽃피우지 못했을 뿐, 어르신들에게는 차고 넘치는 재능과 열정, 순수함이 있다. 게다가 세월이 만들어 준 경험과 통찰로 그들의 글은 몇 줄만 쓱 써도 시가 되고 그림이 된다. 각기 다른 반짝임을 캐치해 되돌려주기만 하면 된다. 수업 전만 해도 경직되었던 표정이 점점 느슨해지고, 수업이 끝나면 아쉬워하는 얼굴을 바라볼 때면 오늘 수업도 성공이구나 싶다. 나 역시 학생들의 칭찬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니 얼마나 좋은가. 글 쓰는 법 따위,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게 뭐가 중요한가. 이미 모두가 행복한 수업이었는데.

그날 이후 글쓰기 수업의 8할은 칭찬임을 마음에 새겼다. 이후 대부분의 수업에서 칭찬에 정진하며 학생들 기 세워주기에 전념한다. 그다음부터는 모든 게 저절로 돌아간다. 기고자 : 김신회 작가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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