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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넘는 인체 모형 태우고 추돌 시험하는 보험개발원 연구소

"차량 출발하겠습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경적 소리가 울리자, 1억5000만원짜리 인체 모형(더미)을 태운 그랜저 차량이 13m 앞에 세워진 코나 차량을 들이받았다. 지난 2월 경기 이천시에 있는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에서 자동차 추돌 실험이 벌어진 것이다.

속도는 시속 5㎞로 빠르지 않았다. 일부러 저속 추돌 실험을 한 것이다. 두 차량의 외관에 작은 흠집 정도가 났을 정도로 피해는 경미했다. 코나 차량의 운전석에 탄 더미는, 기자가 육안으로 봤을 때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보험개발원 직원 대여섯 명은 차를 에워싸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안에 설치된 장비도 확인했다. 손상 부위에는 스티커를 붙여 표시해두기도 했다. 보험개발원은 1억5000만원짜리 더미를 태우고 이런 '간단한' 실험을 왜 하는 걸까.

◇4년 전 사고 재연… 이게 합의금 500만원이라고?

위 실험은 4년 전 실제 있었던 자동차 사고를 재연한 것이다. 2020년 8월, 기아 K5가 지하주차장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정차된 현대 벨로스터를 접촉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피해 자동차는 리어 범퍼가 일부 손상됐다.

그런데 차량 수리만으로 사고 처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피해 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이 변수였다. 그는 6개월이 넘도록 지속적인 병원 치료를 받았고, 500만원의 합의금도 요구했다. 결국 소송까지 갔는데, 2021년 화해 권고를 받고 보험사 승소로 끝났다.

차량이 약간 손상되는 경미한 자동차 사고여도, 사람이 타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현재 진료비를 심사할 때는 사고가 부상을 유발할 정도인지는 고려하지 않는다"며 "이를 악용해 경미한 수준의 사고에도 장기 치료를 받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차 사고가 나면 뒷목부터 잡고 나오는 이른바 '나이롱환자'가 많다는 것이다.

보험개발원은 추돌 시 피해 차량의 속도변화값을 측정하기 위해 이 사고를 재연했다. 속도변화값이란 사고 직후 극히 짧은 시간에 발생하는 피해 차량의 속도 차이를 말한다. 이 변화값이 시속 8㎞를 넘어야 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다칠 위험이 있다고 본다. 이번 실험에서는 멈춰 있던 코나 차량의 속도변화값이 시속 1.7㎞로 분석됐다. 사고 충격이 무시할 수준으로 작았다는 뜻이다. 보험개발원은 이런 실험들을 통해 사고와 부상의 인과성을 판단할 수 있는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다.

◇지난해 경상 환자 치료비 8633억원

손해보험 업계에서 나이롱환자 문제는 골칫덩이다. 자동차 사고 경상 환자는 대개 타박상과 염좌 등의 병명으로 상해 등급 12~14급을 진단받고 3~4주 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경상 환자가 계속해서 병원을 다니겠다고 주장하면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이런 점을 악용해 과잉 치료를 한다는 것이 보험 업계의 주장이다. 이는 결국 전체 국민의 자동차 보험료가 오르게 되는 문제로 이어진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자동차보험 종합 개선 방안'을 시행했다. 경상 환자가 장기 치료를 받을 땐 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의 방안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 방안은 지난해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

2일 손해보험 3사(삼성화재·현대해상·KB손보)에 따르면, 지난해 경상 환자는 97만4000명으로 집계됐다. 2019년(100만3000명)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2020~2022년보다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비 증가세는 막지 못했다. 지난해 경상 환자 치료비는 총 8633억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6639억6000만원)에 비해 30% 올랐다. 특히 한방병원의 치료비 증가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한방병원의 경상 환자 치료비는 6891억원으로 2019년보다 60% 증가했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보험금 누수 문제로 이어지는 나이롱환자를 잡기 위한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사고의 충격 정도가 경미한 경상 환자에 대해서는 인정 가능한 보편적인 치료 기간을 설정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고자 : 한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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