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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의 맛과 섬] (184) 태안 박속밀국낙지탕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발행일 : 2024.04.03 / 여론/독자 A3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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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꽃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벚꽃이 제주에서 건너와 성큼성큼 여수, 고흥, 영암을 지나 서울 여의도로 질주한다. 살구꽃도 뒤질세라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개나리는 종종걸음으로 벚꽃을 쫓아간다. 벚꽃과 살구꽃이 가로림만을 지날 무렵 '갯밭 우사인볼트' 칠게들이 스멀스멀 기지개를 켠다. 이곳에서는 능쟁이라 부른다. 뒤를 이어 다리가 긴 낙지도 몸을 푼다. 둘은 먹고 먹히는 관계다. 인간은 꽃구경을 하겠다고 야단법석이지만, 옛날에는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했다. 보릿고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남쪽 섬마을에서는 막 건진 연한 톳을 넣어 밥을 지었다. 지금은 로컬푸드라고 하지만 사실은 구황 식품이었다. 씨감자나 씨고구마는 목숨줄이라 손댈 수 없었다. 맛이 있을 리 없다. 거친 밥을 잘 넘어가게 하려면 국을 끓여야 한다. 그런데 국거리도, 육수를 낼 재료도 마땅치 않았다. 통영에 도다리와 쑥국이 있다면 태안에는 낙지와 박속이 있다. 땅과 바다가 만났으니 무슨 말을 더하랴. 탕보다 국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연포탕과 다른 이유다. 박을 먹기 위해서도, 낙지를 먹기 위해서도 아니다. 밥을 먹기 위해, 거친 밥을 먹기 위한 지혜였다.

    박속과 채소를 넣고 끓으면 다리가 긴 뻘낙지를 넣었다. 낙지는 오래 삶으면 질겨진다. 낙지 발이 움찔움찔할 때가 식감이 부들부들하다. 이때 꺼내 집간장에 찍어 먹는다. 그리고 시원하고 심심한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술술 잘 넘어갔다. 그런데 밥이 아니라 칼국수나 수제비를 넣는다. 대가족이 끼니를 해결하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더구나 식량이 귀한 시절에 말이다.

    삽으로만 잡아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낙지는 흔했지만 쌀은 귀했다. 갯벌을 막아 논밭을 만들어야 했던 시절이다. 쌀값은 비싸고 낙지값은 헐했다. 그렇게 보릿고개를 이겨냈다. 지금은 봄·여름이 아니라 겨울에도 박속낙지를 먹는다. 밥을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낙지를 탐하는 것이다. 그 사이 밥은 넘쳐나고 낙지는 귀해졌다.
    기고자 :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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