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英 옥스퍼드대 21년 만에 총장 선거… 메이·블레어(前 총리) 등 거론

    파리=정철환 특파원

    발행일 : 2024.04.03 / 사람 A22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백인 남성이 독점해 온 후보군
    바뀐 선거 방식에 전통 깨질까

    영국 명문 옥스퍼드 대학이 6월로 예상되는 총장(chancellor) 선거로 들썩이고 있다. 2003년 이후 21년 만에 열리는 총장 선거인 데다 전직 총리 등 유명 인사들이 대거 후보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옥스퍼드대 학사 운영은 부총장이 총괄하고 총장은 명예직에 가깝다. 하지만 영국 사회 엘리트의 산실이자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1096년경 설립)의 수장이라는 상징성이 크다. 또 사상 최초로 인터넷 투표를 도입하는 등 총장 선거 규정을 둘러싼 논란도 벌어지며 영국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선거는 5월 80번째 생일을 앞둔 크리스 패튼 총장의 은퇴 발표로 확정됐다. 그는 지난 2월 아이린 트레이시 부총장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교황도 중간에 그만두는 세상에서 (종신 총장을 하는 것은) 점점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옥스퍼드대 규정에 따라, 이 대학 총장은 죽거나 사임할 때까지 직을 수행한다. 2003년 3월 선출된 패튼 총장은 이 규정에 따라 21년 넘게 총장직에 몸담아 왔다. 그의 전임자들은 대부분 종신 총장을 지냈다. 2003년 총장 선거는 전임 총장인 로이 젱킨스 힐헤드 남작이 사망하면서 치러졌다. 젱킨스 남작 역시 1987년 해럴드 맥밀런 당시 총장이 사망하면서 총장에 선출된 경우다.

    새 총장 후보로는 토니 블레어,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등 전직 총리들부터 로리 스튜어트 전 국제개발부 장관까지 쟁쟁한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모두 옥스퍼드 출신이자 정계 유명 인사란 공통점이 있다. 옥스퍼드대 총장은 대체로 이런 거물들이 맡아왔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17세기 영국의 최고 권력자 중 한 사람이었던 올리버 크롬웰 호국경, 19세기엔 나폴레옹을 쓰러트린 워털루 전투의 영웅 아서 웰즐리 전 총리 등이 옥스퍼드대 총장을 지냈다"고 전했다. 20세기 들어서는 인도 총독 출신으로 윈스턴 처칠에게 총리직을 양보한 에드워드 우드 핼리팩스 백작, 이어서 해럴드 맥밀런 보수당 전 총리 등이 옥스퍼드 총장을 맡았다. 현직 패튼 총장 역시 보수당 의장과 반환 전 홍콩의 마지막 총독을 지내 유명하다. 그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도 지냈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는 이런 전통이 깨질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특히 13세기 이후 백인 남성이 독점해 온 총장 후보군이 다양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에 여성인 엘리시 안지올리니 옥스퍼드대 세인트휴 칼리지 학장, 옥스퍼드 출신의 임란 칸 전 파키스탄 총리 등도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총장 선거 방식이 바뀐 탓이다. 먼저 사상 최초로 인터넷 선거가 도입됐다. 종전에는 옥스퍼드 교내의 셀도니언 극장에 졸업생 수천 명이 직접 출석해 투표했다. 또 엄격한 자격 요건에 따라 총장 후보를 걸러내는 '총장 선거 위원회'가 설치됐다. 이전 선거까지는 옥스퍼드 교수·동문 50명의 추천만 받으면 총장 후보로 출마할 수 있었다. 교수와 행정가로 구성된 총장 선거 위원회는 평등과 다양성의 원칙을 고려할 계획이라고 이 대학 공식 소식지인 옥스퍼드대 가제트는 전했다. 옥스퍼드대 학생 신문 셰어웰은 "선거 방식의 변화는 총장 선출 과정에 대한 참여를 늘리고 현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옥스퍼드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아직 구체적인 총장 후보 자격 요건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영국 내 보수층에선 상당한 반발이 나온다. 새 선거 방식이 오히려 비민주적이며, 능력과 관계없이 여성이나 소수 인종을 총장으로 만들려는 이른바 '워키즘(wokeism·깨어 있는 척하기)' 시도란 것이다. 옥스퍼드대 출신 보수당 하원 의원 7명은 지난달 말 더타임스에 "새로운 총장 선출 방식은 사실상 소규모 내부 위원회에 의한 선출"이라고 비판했다. 총장 선거 위원회가 자신들이 선호하는 인물이 당선되도록 후보자군을 '조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또 "세계 다른 유명 대학이 능력주의에서 멀어진 결과는 참담했으며, 옥스퍼드대는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고도 주장했다. 더타임스는 "이는 미국 하버드대의 첫 흑인이자 여성 총장이었던 클로딘 게이가 반(反)유대주의 논란과 논문 표절 의혹 끝에 사퇴한 일을 지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옥스퍼드대가 정치인 총장을 후보에서 배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어 올해 하반기 총선 과정에서 선거운동 등 정치 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는 메이나 존슨 등의 후보 자격이 문제시될 수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기고자 : 파리=정철환 특파원
    본문자수 : 2192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