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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승부사들] (19) 영화음악가 이병우

    신정선 기자

    발행일 : 2024.04.03 / 문화 A2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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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 감정 끌어올리려면… 오히려 중립적 음악을

    "여지껏 본 적 없는 영화적인 모멘트를 만들고 싶어서 영화를 한다"는 봉준호 감독이 촬영 직후 감격에 북받쳐 촬영감독을 부둥켜안았다는 장면이 있다. 영화 '마더'(2009)의 마지막 관광버스 단체 춤 장면이다. 배우 김혜자가 무엇엔가 홀린 듯 사람들에 섞여 막춤을 추는 사이 석양빛에 스며든 기타 선율이 꿈인 듯 환상인 듯 이어진다. 그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 영화음악가이자 기타리스트 이병우(59)가 '마더'를 들고 미국 뉴욕에 간다. 오는 20일 100년 역사의 유서 깊은 공연장인 맨해튼 '타운홀(The Town Hall)'에서 현지 관객을 만난다. '마더'를 스크린에 상영하면서 삽입된 음악만 이병우가 라이브로 들려주는 색다른 공연이다.

    이번 공연은 타운홀 측의 초청으로 성사됐다. 이병우는 본지 인터뷰에서 "저는 한자리에서 음악만 했을 뿐인데, 해외에서 어찌 알고 연락이 오니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음악한 지 30년이라, 이젠 정리를 할 시기인가 했는데 재작년쯤부터 제 음악을 좋아한다며 해외 팬들이 유튜브로 인스타그램으로 연주 영상을 올려주더군요. 초청도 잇따라 계획에도 없던 새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2022년 10월 벨기에 겐트에서 열린 제49회 겐트국제영화제의 한국 영화음악 공연 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브뤼셀필하모닉과 '장화, 홍련' '괴물' 등을 연주했는데 현지 팬들의 반응이 너무나 뜨거워 곧바로 다음 공연을 제안받았다.

    '기타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이병우가 1980년대 조동익과 함께 만들었던 듀오 '어떤날'의 앨범에는 스물한 살 빛나던 청춘의 아련한 시정(詩情)이 담긴 곡이 빼곡했다. 이병우는 '어떤날'을 뒤로 하고 유학을 떠났다가 1996년 우연히 의뢰받은 영화 '세 친구'를 시작으로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에 몰두했다. 이후 '왕의 남자'(2005) '관상'(2013) '국제시장'(2014) 등 27편의 음악을 맡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음악가로 우뚝 섰다.

    그는 "영화음악의 역할은 감정의 극대화"라고 했다. "때론 음악이 의도치 않게 관객의 감정을 정의해버릴 때가 있죠.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오히려 중립적인 음악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되도록 추상적으로, 정형화되지 않게 만들려고 하죠."

    영화음악 작업이 일종의 게임이 될 때도 있다. 음악 자체의 완성도에 집중하는 음악감독과 자신의 직관을 믿는 감독의 취향 사이 섬세한 조율이 필요하다. '마더' 작업 때는 봉 감독과 딱 한 장면에서 의견이 부딪혔다. 이병우는 "여기에 반드시 음악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봉 감독은 "여기에 음악은 절대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맞섰다. 어느 장면인지 절대로 알려줄 수 없다고 하던 이병우는 거듭 부탁하는 기자에게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라"며 아주 자세히 설명해줬다. 듣고 보니 음악에 따라 느낌이 확연하게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완성작은 봉 감독 뜻대로 갔다. 이병우는 "이번 뉴욕 공연 때도 그 장면은 음악 없이 간다"며 "그게 제 손을 떠난 영화음악의 인생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이나 사람이나 꼭 유명해야 좋은 게 아니잖아요. 세상에 아름다운 음악이 많은데 굳이 제 음악까지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하나 싶다가도 해외의 전혀 모르는 분들과 제 음악을 나눌 기회가 생겼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서 온마음으로 연주해보렵니다."

    ☞이병우

    1980년대 조동익과 듀오 '어떤날'로 두 장의 앨범을 낸 뒤 유학을 떠나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 클래식 기타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 피바디음악원을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27편의 영화음악 외에도 낭만과 실험성이 돋보이는 6장의 기타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 음악감독을 지냈다.
    기고자 : 신정선 기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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