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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마녀도 두 손 들었다는 사과 값

    송혜진 산업부 차장

    발행일 : 2024.04.02 / 여론/독자 A3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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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 5개에 2만9000원. 할인했다는데도 값이 이랬다. 먹고 싶을 때마다 이 돈 주느니 한 송이에 3800원인 바나나를 먹자고 생각도 해봤고, 5개에 9000원인 오렌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야간 떨이 세일로 파는 무른 딸기를 2만원 가까이 주고 사 먹으면서 애써 맘을 달랜 날도 있었다.

    사람 맘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5개에 1만원대일 땐 그렇게까지 간절하지 않던 사과가 3만원 가까이 되고 나니 꿈에 본 듯 아른거렸다. 아침에 시원하게 한두 개만 깎아 먹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달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 그저께쯤인가, 새벽 배송으로 사과를 드디어 샀다. 아침에 받자마자 한 입 깨물 때의 기분이란. '사과, 그깟 것 비싸면 안 먹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누가 말했던가. 이토록 눈물겹게 아삭한 맛인데 말이다.

    황당한 금(金) 사과 해프닝은 대체 어쩌다 시작됐을까. 정부와 과수 농가 양쪽을 취재해보면 돌아오는 답은 대개 비슷하다. 이상기후 때문이라고들 한다. 연평균 기온 섭씨 10도 안팎, 생육기 기온 15도 안팎의 비교적 서늘한 기후에서 사과는 대개 잘 자라는데, 최근 우리나라 기후가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사과 재배 지역이 강원도까지 북상했다는 것이다.

    작년 갑자기 찾아온 기상이변도 컸다. 3월 기온이 예상보다 따뜻해 꽃이 빨리 피었고, 4월 갑자기 추워져 일찍 핀 꽃이 얼어버렸다. 그 바람에 꽃이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했다. 이른바 봄 냉해다. 냉해를 용케 피한 경우에는 과수 화상병에 걸렸다. 이 병엔 약이 없단다. 걸리면 나무를 죄다 베어내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년 여름은 평년보다 고온다습해서 탄저병까지 돌았다. 사과 생산량이 30%가량이나 줄어들었다는 이유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다 납득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그렇다면 작년 3월부터 지금의 사과 대란을 짐작할 수 있었다는 얘기 아닌가. 이상기후가 한두 해 문제도 아녔거니와, 작년 기상이변이 한두 달만의 문제도 아녔다는 소리다.

    사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인 만큼 생산량도 제일 많다. 국내 과일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그래서 사과 값이 뛰면 다른 과일 값도 같이 뛴다. 정부가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이렇게 식탁 물가에 가장 중요한 과일인데도 뒤늦게 수급에 문제가 생겨 가격이 다락같이 뛰어오르고 난 뒤에야 허둥지둥 뒷수습에 나선 것이다.

    사과가 금값이 되기 전에 얼마나 비싸질지 모니터링하면서 시장 공급량을 세밀하게 조정할 순 없었을까. 미국이나 유럽 등에선 사과 선물 시장의 움직임을 보면서 생산량을 미리 늘리거나 수입량을 조절하는 방식을 쓴다. 우리나라는 아직 사과 수입을 하진 않지만 저장된 사과를 어떻게 풀지 판단하고 이를 통해 공급량을 조절할 순 있을 것이다.

    생산량과 저장·보관량도 이젠 좀 정확히 파악하자고도 말하고 싶다. 통계청이 추정하는 사과 생산량과 농림축산식품부가 말하는 사과 생산량의 수치가 제각각일 때가 있다. 국내 저장 사과의 전체 보관량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일부 중간 유통 상인들이 지금도 가격을 올리기 위해 저장 사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고 의심받는 이유다.

    최근 사과 값 기사를 여러 번 썼더니 어느 주부 커뮤니티 회원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기자님, 요즘엔 마녀도 사과가 너무 비싸서 백설공주 암살을 포기한대요"라고 했다. 마녀도 두 손 들게 한 사과 값. 물가 당국이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다음은 대비할 수 있었으면 한다.
    기고자 : 송혜진 산업부 차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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