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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미래 사피엔스] (52) 벤치마킹의 종말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발행일 : 2024.04.02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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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아무리 새롭고 어려운 일도 노력하고 적응하면 어느 한순간부터 쉬워지고 당연해진다. 개인만이 아니다. 국가 역시 적응과 혁신을 반복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여러 역사적 이유 때문에 선진국들보다 산업화를 150년 정도 늦게 시작한 한국. 영국에서 증기기관차를 만들 때 우리는 여전히 임금님 수라상에 차릴 음식 걱정이나 하고 있었다. 글로벌 과학기술, 군사, 그리고 문화적 흐름에서 뒤처지는 순간 후진국이 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 세상의 잔혹한 현실이다. 하지만 늦은 자에게 주는 역설적 혜택도 하나 있다. 남들이 먼저 시작했기에,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미리 알고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20세기 중반부터 뒤늦게 산업화를 시작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언제나 선진국들의 과거였다. 산업화라는 역사적 시험을 마치 답안지가 이미 나와 있는, 그러니까 '오픈북'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언제나 답을 알고 있었던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 덕분에 우리는 객관식 생각과 벤치마킹에 너무나도 적응해버렸다. 모든 질문에는 이미 정답이 있고, 정답을 아는 자를 모방하고, 흉내 내고, 따르면 된다는 생각에 적응해버린 우리. 하지만 한국 회사가 만든 차 안에서 한국 기업이 만든 휴대폰으로 세계인들이 K팝을 즐기고 있는 2024년 벤치마킹은 더 이상 만병통치약이 아닌, 시대착오적인 문제의 원인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 인간이 아니지만 새로운 것을 생성해낼 수 있는 존재를 경험하는 인류역사상 첫 세대가 바로 우리다. 우리보다 먼저 경험해본 사람과 국가가 없기에,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의 문제들은 우리 스스로의 경험과 상상력, 그리고 피눈물 나는 노력을 통해서만 해결해낼 수 있다. 벤치마킹을 종말시켜야만 인공지능 시대 대한민국의 미래도 있다는 말이다.
    기고자 :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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